'풍화(風花)'란 격정을 일구는 여자요, '설월(雪月)'이란 매서운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는 남자다. 이 결정적 섹스 메타포인 '풍화설월'이란 글씨가 박힌 주화(鑄貨) '춘화전(春花錢)'을 마니아들은 '섹스 코인' 또는 '해피 코인'이라 부르며 수집하려고 안달이다. 앞면에 예서체로 '풍화설월'이, 뒷면엔 네 가지 남녀 성희 장면을 부조해 놓은 이 주화를 시집가는 딸의 장롱 속에 넌즈시 집어 넣어 성교육시킨 조선시대를 어찌 '성 반동 시대'라 매도할 수 있겠나.

춘화전이 나오기까지 옛 사람들이 '엽전'이라 하고 지금 우리들이 '동전'이라 부르는 이 주화의 역사적 행로는 길다. 금속화폐가 인류사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2000년 무렵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였고, 중국 주(周)에서는 구멍 뚫린 환폐(環幣)를 처음 제조했다. 우리는 기원전 57년 '자모전(子母錢)'이라는 철전(鐵錢)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주화의 효시라고 조선 후기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가 전한다.

국내 최초로 4천여 종 우리 주화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고전연구가 한영달(韓榮達) 씨는 강원도에서도 엽전이 주조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상평통보 중 단자전(單字錢)과 당이전(當二錢)에 '원(原)'이나 '원이(原二)', '강(江)'이나 '강이(江二)'란 글자가 보이면 이는 조선 숙종 연간에 각각 원주와 강릉에서 만들어진 엽전이라는 것이다. 춘천과 관련된 '춘자전(春字錢)'도 주조됐다고 한다.

한국은행 춘천지점의 '주화수급정보센터' 개설을 계기로 주화 즉 동전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것 같다. 서랍과 저금통에 동전을 마치 춘화전처럼 모아 둘 것이 아니라 수시로 꺼내 써서 매년 300억 원이나 드는 주화 발행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지금 한 가정마다 평균 327 개의 주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 퇴출 동전을 주화수급정보센터로 보내야 하지 않겠나.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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