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적을 막겠으니 바다에 묻어 달라"고 했다는 신라 문무왕의 유언이 입증하는 대로 왜구의 동해 해상테러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 여·원(麗元)연합군이 일본원정에 실패했다. 동해는 물론 남해 서해까지 일본 해적집단이 장악했다.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근거지로 삼았던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년 동안 100∼500척 선단의 전쟁 군단이 돼 바다를 건너왔다. 수도 개경(開京)의 코앞 강화 교동과 예성강 어구에서도 노략질을 했다. 그 사실을 요즘 학생들이 역사책에서 배우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누락되고 있는 해상테러도 있다. 1957년 11월 9일 거진 앞바다에서 기범선(機帆船:동력기관과 돛을 함께 갖춘 작은 배) 8척이 어부 47명을 태운 채 북으로 끌려갔다. 공식적으로 첫 피랍 사건이다. 검은 '해적선'은 때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다. 그들은 너무 늙거나 어려 뒤처지는 누(gnu)를 공격하는 치타나 하이에나처럼 느려빠진 통통배만 골라 끌어갔다. 정말 해적선처럼 갈고리를 던져 예인하기도 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70년대까지 총 128척의 어선과 1천147명의 어부가 동해에서 그렇게 피랍 됐다.

그러나 북위 38도 36분 51초 위로 지나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폭 4∼5마일의 손바닥만 한 바다에서 일어났던 20세기의 기록적인 해상테러는 별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북한 상선이 이번에는 동해에서 NLL을 침범했다. 해군의 통신검색에 북한 남포2호는 "기름이 부족해 항로변경이 어렵다"며 현 그대로 동진 해 문제해역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걸까?' 국민의 궁금증 그리고 불안감 배경엔 북한 해상테러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남아 있다.


咸光福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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