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르고 가슴 타는 석달 가뭄 끝에 곧바로 이어지는 장마다. 장마전선의 척후병처럼 2호태풍 '제비'가 한반도를 서남에서 동북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지나갔다. '제비'가 뿌린 비로 남부지방 일부 지역에서는 농경지가 붕괴되고 축대가 무너져 주민들이 대피하는 물난리를 겪고 있다. 힘겹게 가뭄을 이겨낸 농민들이 물 속에 잠긴 논밭을 망연히 바라보는 모습이 애처롭다.

'제비'가 도내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동해바다로 빠져나간 건 다행이지만 본격 장마가 뒤따르고 있으니 걱정이다. 지난 가뭄때 여기 저기 파헤쳐놓은 개울 바닥과 곳곳에 뚫어놓은 관정, 가뭄과 싸우느라 미처 손보지 못한 수해 위험지구, 지난해 큰물로 수해를 입고 아직 보수공사가 끝나지 않은 제방이나 도로의 절개지, 근본 대책이 없는 저지대 상습 수해지구…. 바짝 마른 계곡을 휩쓸고 한꺼번에 흘러내리는 물이 개울 둑을 넘으면 긴 가뭄을 이겨내고 겨우 뿌리를 내린 농작물 피해가 얼마나 클까.

중국사람들은 이맘때 장마비를 매우(梅雨)라고 부른다. 매실이 익을 무렵 양자강 유역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많은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인 비가 한꺼번에 내린다고 적우(積雨)라고도 하고 빗줄기가 숲(林)을 이루듯 퍼붓는다고 임우(霖雨)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구름(雲)이 해(日)를 가려 어두운 하늘을 담천(曇天)이라 하고. 하지만 우리 옛말에 장마는 그냥 '마'였다. 그 마가 하도 길어 장마가 되었다. "비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먹여라/마히 매양이랴 쟁기 연장 다스려라/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고산 윤선도의 하우요(夏雨謠)에 나온 '마'가 바로 장마인 것이다.

'가뭄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했고 '석달 가뭄엔 살아도 석달 장마엔 못산다' 했다. 장림담천(長霖曇天)을 견뎌낼 준비가 제대로 되었는지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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