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고 장준하(張俊河)선생이 추락사한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약사봉 일대를 항공 촬영했다. 당시 목격자와 관련자들도 소환했다. 그리고 6월, 金대통령에게 "장준하 선생은 타살혐의가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진실이 밝혀져 정의가 이긴다는 믿음이 없다면 사회는 양심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위해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당연한 의무"라고 덧붙임으로써 그의 사인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표명했다. 그 '의지'에 쏠린 각계의 눈길이 지금 떼어지지 않고 있다.

왜 장준하일까? 일제의 학도병에 동원됐다 탈출해, 광복군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지성과 민주화의 분신이던 잡지 '사상계'를 창간해 함석헌(咸錫憲)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첫 필화를 겪은 후 김지하(金芝河)의 시 '오적'으로 등록 취소될 때까지 권위주의정권에 항거했던 언론인. 5·16 후, '박정희 대통령불가론'을 주장하다 구속되는 등 9차례 구속과 석방을 오갔던 민주화 운동의 태두…. 그를 향해 열광할 것들은 많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생전의 함석헌은 '이 인봉한 두루마리를 풀자가 누구냐?/아무도 없으므로 내가 우노라!/아 장준하야!'란 말로 대신 했다.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7일은 장준하가 57년 전 일본 스카다 부대를 탈출한 날이다. 그날에 맞춰 한국의 대학생 45명이 지금은 중국 공정부대로 변한 쉬쩌우(徐州)의 그 부대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가 갔던 발자취를 따라 중원을 횡단하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6천리 대장정에 들어갔다. 솔직히 젊은이들이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시대, 그들 스스로 대륙과 큰 강을 가고 있다.


중국 쉬쩌우= 咸光福 논설위원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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