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만년에 쓴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誌)'에서 동해안의 산수를 이렇게 평한다. "바닷물이 푸르러서 하늘과 하나 된 듯하고 앞을 가리는 게 없다. 해안은 모두 반짝이는 눈빛 모래로 되어 있어 밟으면 사각사각 구슬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모래 위에 해당화가 붉게 피었고 가끔 우거진 소나무 숲이 하늘에 솟아있다. 그 안에 들어서면 문득 사람의 생각이 변하여 인간 세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자신의 형체가 어떤 것인지 잊게된다. 다만 황홀하여 하늘을 날고싶은 마음까지 든다."

이중환의 동해안 산수평은 다음 대목에 이르러 극찬이 된다. "이 지역을 한 번 거친 사람은 저절로 딴사람이 되고 그냥 지나간 사람도 10년 후까지 그 얼굴에 산수와 자연의 기상이 그대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동해안 산수에 반한 사람이 어디 이중환 뿐인가. 송강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말로만 듣던 동해안 땅을 직접 밟으며 한국 가사문학의 백미 '관동별곡'을 써 남겼다. 그들보다 훨씬 전 시대에 대제학을 지내면서 악학궤범을 편찬한 로맨티스트 성현(成俔)은 임금에게 죄를 입고 파직 당하자 그 길로 동해안을 찾아 고성 삼일포에서 노닐며 그중 수려한 봉우리에 자신의 승지 직함을 따 승선대(承宣臺)란 이름을 붙였다. 양양 낙산사를 거쳐 서울로 돌아간 그는 '용재총화' 곳곳에 동해안 얘기를 쓰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동해안의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전국민의 관광 피서 휴양지로 명성을 떨친다. 수도권 주민들의 절반가까운 46.5%가 올 여름 피서지로 강원 내륙지방과 동해안을 꼽았다는 교통개발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강원도 동해안은 이미 한국 관광의 메카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다만 올여름도 피서객 북새통 속에 교통혼잡과 바가지 상혼으로 동해안 이미지가 얼마나 구겨질까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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