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도 작고 체질도 허약한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동네 청년들이 그를 늘 약골 겁쟁이라고 놀렸다. 하루는 청년들이 모여 약산에서 약초를 캐오는 사람에게 제일 담 큰 사람의 칭호를 주자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약골' 청년을 부추겼다. 약산은 진귀한 약초가 많이 자라는 산이지만 깊고 높고 험한데다 사나운 짐승이 많아 웬만한 사람은 겁부터 먹는 산이었다. ‘약골' 청년은 겁쟁이란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싶어 어머니와 갖시집온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약산으로 들어갔다.

삼년이 지나도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아내는 이름 모를 병으로 수척해졌고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가 안쓰러워 억지로 개가를 시켰다. 아내가 이웃마을로 시집간지 한 달만에 ‘약골' 청년이 귀중한 약재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돌아왔다. 그중에는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기진맥진했을 때 그를 살려낸 약초도 들어있었다. 청년은 이웃마을로 아내를 찾아갔지만 남의 식구가 되어버린 그녀는 병색이 완연했다. 청년은 가지고 간 약재를 건네주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아내는 차라리 죽고싶어 며칠동안 계속해서 그 약재를 날로 씹어 삼켰다. 그런데 죽기는 커녕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옛날의 건강을 되찾았다.

그 소문이 마을 안팎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청년이 캐온 약초를 얻어다 심었다. 약초와 함께 이런 노래도 퍼졌다. "돌아오겠다던 남편 돌아오지 않고(丈夫當歸而不歸)/시어머니 등쌀에 개가를 했네(閉得老婆改家人)" 중국 안휘성 장천지방에서 잔해오는 당귀(當歸) 전설이다. 당귀는 각종 강장약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약초이고 특히 통경(通經) 진통 조혈 등 부인병 치료제에 감초처럼 쓰인다. 그 당귀가 일시적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정부가 중국산 수입을 검토하자 재배 농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마늘파동에 이은 당귀파동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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