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경전은 혼자 읽어야 좋고 '사기'와 '통감'은 벗과 더불어 읽어야 좋다"고 말했다. 이를 옮기면서 정민(鄭民) 교수는 "마음 속에 맺히는 옛 성현의 미묘한 말씀은 혼자 맞대면하여 만나야만 내 가슴의 말씀이 되고, '사기'와 '통감', 역사의 주인공들이 성공하고 실패하고, 울부짖고 부릅뜨는 그 진진한 사연들은 함께 통탄하고 한숨짓고 감개할 벗이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귀뚜라미 소리가 귀에 가까워졌다. 아침 해가 따뜻하고 낮이 짧아졌다. 하늘이 높아가자 말이 살찐다. 이런 익숙된 관용구의 사실성을 맛보기 위해선 뜰 앞에서 잠시 변화하는 계절에 오감을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익숙지 못한 현대인들은 그저 방구석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 따름이다. 계절은 화면 속에서 제 혼자 왔다가 그렇게 사라져 가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노염(老炎)으로 남으려던 여름이 드디어 청랑한 가을바람에 자리를 양보할 것임을 안다. 시원한 아침 저녁이 반갑다. 휴가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여름 이야기를 나누다가 드디어 홀로 조용히 안으로 침잠할 때임을 느낀다. 그러자 놓았던 책에 다시 눈을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기'와 '통감' 같은 역사책을 읽으며 벗과 더불어 세상과 사람살이를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

옛 문장가 장조는 또 말한다. "경서를 읽기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專一)한 까닭이다. 역사서를 읽는 데는 여름이 적당하다. 그 날이 길기 때문이다. 문집을 읽자면 봄이 제격이다.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운치가 남다른 까닭에 가을에는 제자백가를 읽는 것이 알맞다"고 주장한다. 바뀌는 계절에 따라 책을 수북이 쌓아 놓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라도 좋으리라. 이 가을 초입에 그렇게 해 봄이 어떠할까.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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