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동지방의 모래언덕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비옥한 삼각주에서 알갱이가 포동포동하여 껍질을 벗기기에 좋은 야생 밀을 따먹어 보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9천년경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돌아다니면서 사냥하는 데는 사방 수십 리의 땅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의 땅에다 곡식을 심으면 5천 명이 먹고 살 수 있다.' 그리하여 기원전 약 7천년쯤부터 티그리스 유프라데스 계곡에 인간이 재배한 밀이 대량으로 자라게 된다.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기원전 6천년경에 보리 재배에 성공하고, 기원전 3천년쯤엔 콩을 개발하게 된다. 1496년 콜럼버스에 의해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옥수수는 인디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재배해 오고 있었다. 그러면 벼(쌀)농사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의 경우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서로 다르다. '청원 소로리 구석기 유적 조사 보고서'에는 "1만3천 년 전 점토층에서 '고대벼'가, 1만7천 년 전 토탄층에서 '유사벼'가 발견됐다" 하고 있다.

'소로리 볍씨'가 '현대벼'와의 유사성이 39.6%에 불과해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쪽은 '일산 가와리 유적'이나 '김포 가현리 일대' 4, 5천여 년 전의 토탄층에서 나온 볍씨조차 야생벼를 채취했을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천년경에는 벼가 한강 하류 유역에서 재배됐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9천여 년 전부터 벼가 재배됐고 양쯔강 '허무두(河姆渡) 유적' 부근에선 기원전 5천년경에 벼 도작이 시작됐으니, 우리도 그 무렵쯤 쌀농사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반만 년 쌀농사를 지어온 우리로서는 최근의 쌀 잉여에, 값 싼 수입쌀에, 3 년 연속 쌀 풍년에, 쌀 값 폭락 염려에, 그리고 '하루 세 끼 밥을 먹자'는 쌀 소비 촉진 운동에 여러 가지 느낌을 갖게 된다. '농자천하지대본'인데 어쩌다가 우리 쌀이 이렇게 천대받게 됐나?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