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지만 가을의 전령은 역시 풀벌레 울음소리고 그중 대표적인 게 귀뚜라미 우는 소리다. 덩두렷이 떠오른 휘영청 달빛 아래 끊일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애절한 가을 서정을 적신다. "작은 벌레 귀뚜라미/슬픈 소리 어찌 사람을 그리도 흔드나/풀섶에서 울땐 멀리 들리더니/한밤중 침상 아래서 더 가까이 들리는구나" 타향에서 떠도는 시인 두보에게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그대로 슬픔이었고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었으리라.

'귀뚜라미 울면 게으른 여인이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귀뚜라미가 우는 철은 길쌈을 서둘러야 할 계절이라 생긴 말이다. 그래서 길쌈을 재촉하는 벌레라는 뜻으로 귀뚜라미를 촉직(促織) 또는 취직(趣織)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귀뚜라미 소리는 역시 가을의 조락(凋落)과 애상(哀傷), 고독과 죽음을 상징하는 비창(悲唱)이다. "홀로 앉아 늙어감을 슬퍼한다/빈방 이경(二更)에/밖에는 찬 비 내리고 산열매 떨어지는 소리/등잔불 아래 벌써 귀뚜라미 우는구나"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상이 우리의 시인 소월(素月)을 통해 이렇게 되살아난다. "찬 비 듣는 소리/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숯막집 불도 꺼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귀뚜라미가 유달리 가을 서정을 슬픔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다른 풀벌레들과는 달리 사람이 사는 집 안에 깃들기 때문이다. 처마밑 섬돌사이, 툇마루 밑, 부엌 문지방 아래, 헛간 지붕밑에, 들창문 창살에 긴 다리를 버티고 달라붙어 우는 벌레라 그 낯익음에서 더큰 슬픔이 나온다. 입추가 물러가고 '어정 칠월' 처서 칠석이 지나 저만치서 백로가 다가오면 '동동 팔월' 선들선들 가을 바람이 이내 서리를 몰아올 것이다. 귀뚜라미 우는 계절의 서글픔이 잠깐이듯 그렇게 무상한 인생도 잠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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