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가 창궐했던 1895년, 고종실록에 기록된 이 병의 이름은 '호열랄(虎列剌)'이었다. 전에 없던 병이 갑자기 나돌아 예방도 치료도 속수무책일 때 대개 '괴질(怪疾)'로 적는 게 보통인데 호열랄이란 병명을 분명하게 기록한 것은 이 병이 이미 중국에서 호열랄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레라의 발음과 비슷한 중국 표기가 바로 호열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자 '어그러질 랄(剌)'은 얼핏 보아 '찌를 자(刺)'와 비슷한데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아 어느틈엔가 호열랄이 '호열자'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콜레라와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그 무서운 호랑이(虎)를 끌어댄 걸 보면 이 병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콜레라는 말라리아 결핵 등과 함께 후진국성 질병에 속한다. 생활환경이 지저분하고 음식물의 조리 보관이 허술하거나 영양의 불균형에서 발생하고 전염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져가던 과거의 질병'들이 아프리카 동남아를 비롯한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다시 만연하더니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DMZ 접경지역 일대에 말라리아 광견병등이 발생해 보건당국을 긴장시킨데 이어 늦더위 속 영남지방에서 번지기 시작한 콜레라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감염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이지만 매양 그렇듯 이번에도 보건당국이 허둥거리며 뒷북을 치고 있다는 보도여서 후진성 질병에 대응하는 보건행정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콜레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소(CDC)가 페스트 결핵 말라리아와 함께 '신흥전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으로 분류할만큼 위협적인 질병이다. 보건당국의 체계적 과학적 방역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개인위생이야말로 이 전염병 감염경로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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