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예조판서와 좌·우의정을 거쳐 1627년 인조 5년에 영의정에 이르렀던 상촌 신흠(申欽)은 그 이전 1613년 한 때에 영창대군의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관직을 삭탈당하고 향리 춘천으로 내려와 지냈었다. 이 무렵 춘천을 대상으로 지은 시조가 '상촌집'에 실려 있는데, 그 중 한 편을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세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 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시조뿐 아니라 춘천을 소재 삼아 지은 한시도 흥미롭다. 신흠이 청평사에 들러 쓴 오언율시 한 편을 보자. '피곤한 나그네가 처음으로 찾아와 보니/ 언덕 위에 절간이 매달린 듯/ 구름이 걷히니 진락(眞樂)이 보이고/ 용호(龍護)는 열경(悅經)의 글이로다/ 폭포수 이슬에 신발은 젖고/ 징검다리 아찔한데 갈대가 받쳐주네/ 동쪽 숲에 달이 벌써 떴고/ 하늘 그림자는 못 속에 희미하도다.' 신흠이 춘천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다양한 형식의 시로써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양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신흠이 치사(致仕) 후 춘천에 내려와 살던 경직(敬直) 김우정(金憂亭)과 헤어지면서 이런 시를 짓는다. '술을 들고 멀리 서쪽으로 보낸다/우두담(牛頭潭) 위 정자에서./ 연원(淵源)은 하내(河內)를 배웠고/ 시례(詩禮)는 제남(濟南)에서 낳다./ 멀리 보이는 고인 물은 갈매기같이 희고/ 먼 산만 눈에 푸르게 보이는구나.' 홍료도(紅蓼島)에 있던 우두정(牛頭亭)에서 지은 시다.

제11회 강원서예대전에서 인천광역시에 사는 신상진 씨가 출품한 작품 '상촌선생 시 제서호지위'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그 때 그렇게 떠난 신흠이 다시 돌아온 듯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춘천을 상촌 신흠은 끝내 잊을 수 없었던 것인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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