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남쪽 650마일 해상에 떠있는 이오섬(硫黃島)은 사실상 태평양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미국과 일본의 최후 격전지였다. 1945년 2월23일 아침, 미해병 28연대 제2보병대대 E중대는 6명의 해병을 선발해 이오섬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작전을 개시했다. 일본군 2만명이 옥쇄했고 2만5천여명의 미군 사상자를 낸 마지막 싸움터에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성조기 게양작전이었다. 초연 자욱한 이오섬 정상에 성조기가 펄럭인 직후 2명의 해병이 일본군 총탄을 맞아 전사했다.

이오섬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은 오랜 전쟁에 시달린 미국인들을 열광케 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6명의 해병이 세운 성조기는 미국의 승리를 확인하고 그 승리를 이룩한 미국인의 저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의 힘 미국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미국정부는 이 한장의 사진을 조각품으로 만들어 워싱턴 D.C에 영구 전시했다. 미국인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떠받치는 기념물이자 미국인의 용기를 북돋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비행기 테러로 삽시간에 주저앉은 거대한 뉴욕 국제무역회관 쌍둥이 빌딩은 지금 거대한 폐허가 되었다. 그 폐허에 깔린 수많은 사상자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구조임무를 수행하던 소방관들도 상당 수가 희생되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자존심이 주저앉은 고층빌딩처럼 무참하게 구겨지고 미국인의 자부심이 한순간 눈물로 녹아내렸다. 그러나 엊그제 미국인들은 폐허 위에 성조기를 다시 세웠다. 쓰러진 깃대가 일어서고 먼지 속에서 피로 물든 성조기가 바람에 나부끼자 그들은 폐허를 딛고 숙연한 자세로 애국가를 불렀다. 다시 펄럭이는 성조기와 조용히 울려퍼지는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건국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미국인들을 새로운 끈으로 묶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태극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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