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돌아가신 시인 서정주는 자신의 아호를 미당(未堂)이라 했다. 자신이 아직 '덜된 집'이라는 말이다. 집을 지으려는데 다 완성되지 못해 '미완의 집과도 같다'는 겸허함이 엿보이는 호다. 서정주뿐 아니라 옛날에 김시습의 호 매월당(梅月堂)이나 홍귀달의 호 허백당(虛白堂)처럼 우리 선비들은 아호에 '집'이란 뜻의 당(堂) 자, 또는 허초희의 난설헌(蘭雪軒)같이 '추녀 끝'이라는 의미의 헌(軒) 자를 붙이기를 좋아했다.

하나의 문화일 터이나 어쨌든 여기에서 읽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몸을 집처럼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집 우(宇), 집 주(宙)라는 우주·정신적 집이든 개인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이든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평지가 아니라 경치 좋은 언덕 위나 경사진 바위 위에 집을 지어 놓고 자연을 벗 삼아 즐겼는데, 누각(樓閣) 또는 정자(亭子)가 그것 아닌가.

누각과 정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삼국시대부터 영·호남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누각은 경회루 광한루처럼 2층 다락집 형태이고, 정자는 태극정 부용정같이 1 층으로 되어 있다. 망루로, 연회 장소로, 또는 수양 휴식 교육 장소로 활용됐던 이런 누각이나 정자가 강원도에도 산재한다. 청간정이 대표적이지만 양양의 의상대나 강릉의 경포대처럼 대(臺)로 이름한 것도 있다.

특히 경포호수 주변엔 우리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려 16 곳에 정자가 있었다. 지금은 몇 곳 남지 않았지만, 그 중 대표할 만한 경포대 정자가 아직도 수려한 자태를 뽑내고 있어 지역 주민들은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경포대 정자가 속으로 썩어 간다는 것이다. 일제 때 심어둔 벗나무가 무성하여 통풍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부디 경포대 주변을 정리할 일이다. 경포대에 올라 호수 바다 그리고 하늘의 달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일제의 잔재도 없애야 할 것이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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