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56년 에페소스의 헤로스트라투스란 사람이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다. '어차피 나쁜 짓을 하려면 후세까지 알려질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달리즘(vandalism)은 그렇게 '관심환기'가 기원이다. 인류의 반달리즘은 한도 끝도 없다. 기원전 3세기초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부터 17세기 그리스를 침공한 오스만 터키 군에 의해 화약고가 됐다가 베네치아 연합군의 대포에 의해 지붕이 날아간 파르테논신전, 터키군의 포격 타깃이 됐던 스핑크스의 코, 일본의 한국 강점이나 2차 대전 당시 강대국들의 문화재 약탈전 등. 침략은 곧 반달리즘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반달리즘은 그런 등식으로는 해석이 곤란해졌다. 예를 들면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지역 간다라 불상 파괴나 그 정권 비호를 받는 빈 라덴의 대미 테러다. 두 사건은 자국 문화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 테러라는 점에서 반달리즘은 침략이나 전쟁만이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그러나 보복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탈레반이 결연한 항전을 표방하는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역시 반달리즘의 원초적 본능은 '관심 환기'라는 것이다.

아프간을 완벽하게 잡아 본 외세는 없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정복했다가 반란에 시달렸고, 알렉산더 대왕도 3년밖에 지배하지 못했으며 영국도 단 1명만 살아 남는 대패를 당한 치욕적 경험이 있다. 구 소련도 5만 명을 잃고 침공 10년만에 철수했다. 덕분에 아프간 국민은 전쟁에 이골이 났으며, 국토는 아무 것도 부서질 것이 없다. 탈레반은 또 한 번 '희생은 최소, 세계적 관심 환기는 극대화' 노하우를 아프간에 쌓으려 하는 것 같다. '구 소련이 아프간을 끝내 굴복시키지 못한데서 미국은 힌트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咸光福 논설위원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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