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 가을 길에/물 마시고 가보시라/수정에 서린 이슬을 마시는 산뜻한 상쾌이라…"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이 땅의 가을을 그렇게 읊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맑고 흐르는 물 고인물까지 맑은 계절, 그 청랑(晴郞)한 하늘 아래 청자의 살결같은 매끄러움과 투명함이 넘친다.속살을 드러낸 앞산 너머로 다가선 먼 산의 능선마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한국의 가을은 그렇게 투명하다.

긴 장마에 말끔히 씻긴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 물줄기들이 합쳐 시내를 이루고 강물로 흐른다. 강바닥 조약돌이 환하게 떠오를만큼 맑은 물이다. 그 자리에 엎드려 두 손으로 떠마셔도 좋을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가을엔 소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는 우리 속담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지싶다. 그런 가을 물에 손을 담그기조차 미안해진다. 물 위를 쓸고 와 이마에 닿는 바람이 향긋하다.

이슬방울이 모인 듯 차갑고 맑고 깨끗한 가을 강물이 흐르는 계절에 북한강은 지금도 흙탕물로 흐른다. 소양댐 춘천댐을 통과한 물이 누런 탁류로 변해 물의 도시 춘천의 맑은 가을빛을 망쳐놓고 있다.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춘천호 소양호에 흘러든 흙탕물이 아직 갈아앉지 않은 탓이다. 장마후에 짧게는 한두달, 길게는 6개월씩 계속되는 북한강 탁류 현상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흙탕물때문에 춘천시는 수돗물 정수비용을 더 쏟아부어야 하고 의암호에서 고기잡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빈 그물을 걷으며 울상이다.

맑은 물도 관광자원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피천득선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 구절로 호반춘천의 가을 경치가 전국에 알려진지 30년이다. '갓끈'을 씻기는커녕 '발'도 씻지 못할 소양강 흙탕물이 호반춘천의 이미지를 망치는데 대책이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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