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사는 차라리 전쟁사다. 돌팔매질로부터 시작해 어느 날 칼을 쓰고, 그러다가 총 대포 미사일로 이어져 드디어 핵무기를 동원해 가며 인류는 여전히 전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전쟁 방식도 무자비해져 전쟁사망자 수가 늘어만 간다. 한 예로 프랑스 유럽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 4 개국의 전쟁사망자 수는 12, 14 세기에 각각 3만, 17만 명 하다가 19 세기에 300만 명, 20 세기에 와선 무려 1천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현대의 전쟁에 비하면 고대의 전쟁은 차라리 인간적이었다. 칼로 도륙해야 하니 비인간적일 것 같으나 눈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볼 때 승자는 곧 오히려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원거리 타격 무기들이 개발되면서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불문율과 기사도마저 사라져 인류는 마침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비인간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이번 테러를 응징하는 '불멸의 정의' 전쟁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고전적 전쟁관은 이미 빛이 바랬고, 니체의 말대로 전쟁은 오직 '강자의 주장'이거나 다윈의 '적자 생존의 자연 법칙에 따른 인류 집단 간의 투쟁'일 따름이다. 스펜서처럼 '전쟁은 인간의 심리·사회적 진화에 적용한 형태'라는 따위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적 이성만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아니면 칼 마르크스의 '생산 수단의 사유를 유지 강화 확대하기 위한 집단과 이것을 반대하는 집단 간의 무력 투쟁 형태'가 부분적으로 아직도 유효하든가.

그래, 손자(孫子)가 좋다.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로 국가 존망과 국민 생활의 기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용병술은 적을 격멸하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케 하는 것이다." 이런 손자적 방식이 아니라면 모든 전쟁은 더럽다. 어찌 미국의 이번 전쟁만 '더러운 전쟁'일 터이냐.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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