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문화관광부가 안동장씨부인과 개화기 여성화가 나혜석을 문화인물로 선정하자 그 선정기준을 놓고 여성계와 문화인물 선정 일부 자문위원들이 논쟁을 벌였다. 문광부는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인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안동장씨를 선정했는데 여성계가 반대하고 나섰다. '장씨부인의 순종과 인고의 삶'은 현대여성들의 귀감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 나혜석이 문화인물로 선정되자 일부 자문위원들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면서 시어머니와 자식을 내팽개친 채 염문을 뿌리고 이혼한 사람이 어떻게 문화인물로 선정될 수 있느냐'고 반대의사를 내세웠다. 나혜석은 '이혼고백서'까지 잡지에 발표하고 당시 외교관이었던 남편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등 맹렬한 기세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섰지만 행려병자로 최후를 맞은 불행한 여성이었다.

장씨부인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에도 등장해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역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17세기 사대부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시·서·화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지만 19세때 아버지의 제자와 결혼해 전처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고 출세시켜 현모양처의 표상이되었다. 작가 이문열은 안동장씨부인이 학문과 예술을 버리고 현모양처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써서 여성들의 비판을 받았다.

여성의 지위와 권익이 날로 신장되어가는 시대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직 힘겨운 가사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주부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주부들의 평상시 가사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하면 월 86만~102만원이 된다는 통계도 나왔지만 한국의 보통 주부들은 그런 통계에 민감하지 않다. 그들은 다가오는 추석 명절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라는 전통적 주부 소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면 남편들 스스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서야 할 것 같다.

노화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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