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군내면 도라산 전망대의 '도라산'은 늘 진주만 기습 작전명 '도라 도라'를 연상시켰다. DMZ가 만들어 낸 조어 같지만, 그 유래는 고려통일 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79년 패망한 신라 경순왕은 서라벌에서 머나먼 천리 길 송도를 찾아가 항복했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도, 비운의 왕은 늘 우울했을 것이다. 왕은 아침, 저녁 해발 156m짜리 낮은 산마루에 올라 신라와 그 도읍지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도라산(都羅山)이라는 것이다.

고랑포 제3땅굴은 도라산 바로 밑이고, 짙푸른 지뢰밭 숲 속으로 숨어 흐르는 사천내부터는 북한 땅이다. 마침 유례 없는 가을가뭄에 시야는 더없이 투명했다. '소나무를 심어 그 명(名)이 체(體)를 표현한다'는 풍수사상에서 유래한 옛 송도(松都)의 진산 송악산은 말할 것 없고, 정작 철원에선 뿌연 실루엣뿐이던 궁예성의 진산 고암산도 무엇 하나 감출 게 없었다. 개성직할시의 일부러 잘 지었을 아파트, 그 보다 더 커 보이는 김일성 동상도 맨 눈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에 '250㎏짜리' 인공기가 매달린 북한군 진지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다시 보면 더 다가와 있었다.

늘 송곳 같은 그 풍광이 건너와 옛 장단역 기차화통에 꽂히던 그곳에서 도라산 유래가 새삼스러운 이유가 있었다. 남방한계선에 다가와 멈춰 선 뻘건 황토 띠, 그리고 그 위에 두개의 평행선이 달려오고 있었다. 문산에서 출발해 임진강 자유의 다리 옆 새 철교로 건너 온 경의선이다. 어느새 12㎞ 남쪽 구간 공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국경역'노릇을 할 도라산역과 함께 '2001년 10월 30일' 준공일도 잡혀있었다. 남북이든, 남남갈등이든 인간이야 싸우건 말건 시간은 제 정해진 목적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서슬 퍼런 DMZ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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