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맛을 완전히 다 알고 나면 손바닥 뒤집듯한 세태에 맡겨 눈을 뜨고 보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인정이 무엇인가를 다 알고 나면 소라 부르거나 말이라 부르거나 다만 머리만 끄덕이고 싶어진다"는 '채근담'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도사연하다가도 세상이 요즘처럼 어지러워질 땐 세상에다 대고 뭐라 한 마디 소리치고 싶어진다. 아직 세상 맛을 다 알지 못한 까닭이요, 인정이 무엇인지 다 가늠 못했기 때문일까?

끓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오늘 우리의 이 번잡한 세상은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 그대로다. 시인 유하가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고 외친 그대로 말이다. 시인은 소리치기를 계속한다. "가는 곳마다 모델 탤런트 아닌 사람 없고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미국서 똥구루마 끌다 온 놈들도 여기선 재미 많이 보는 재미 동포라 지와자. 봄날은 간다-"

90년대의 이 천박한 압구정동이 2천년대에 들어와선 한반도 전체로 확장됐다. 어딜 가나 욕망이 넘쳐난다. '이용호 게이트'는 욕망의 묘지이고 모든 노욕(老欲)은 욕망의 통조림이다. 이승만이 귀국할 때 쓴 한시는 이렇다. "원여삼천만(願與三千萬)/ 구위유국민(俱爲有國民)/ 모년강해산(暮年江海山)/ 귀작일한인(歸作一閑人)" 삼천만과 더불어 나라 찾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여생을 초야에서 한가롭게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욕망에 지고 말았다.

다시 '채근담'. "마음은 항상 비어 있지 않으면 안 되나니(心不可不虛), 비어 있어야 정의와 진리가 와서 살 것이다(虛則義理來居)." 하지만 요즘 우리는 흔히 "마음을 비웠다"를 '욕망'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사건 사건 사건 들이 거의 매일 터지고 터지고 또 터진다는 말인가. 터지는 사건들에 이렇게 가슴을 끓이는 건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인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