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하머니가/먹을 복도 붙여주고/입을 복도 붙여주고/짧은 명은 길게 하고/긴 명은 서리서리/쟁반에다 서려놓고/앉아서 삼만리 서서 구만리 보는/삼신할머니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무릎밑에 접어놓고/어린 아기 치들고 받들어서/먹고 자고 먹고놀고/아침 이슬에 호박 크듯 달붇듯이/더럭더럭 붙게해 주십사/명일랑 동박삭이 명을 타고/복일랑 석숭의 복을 타고…"

해산한 방 산모와 아기 머리맡에 첫국밥 정화수로 삼신상을 차려놓고 우리의 할머니들은 그렇게 빌었다. 대문에는 왼새끼로 금줄을 치고 아들이면 붉은 고추 딸이면 푸른 솔가지를 꽂아 이웃사람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보고싶어 안달이 난 친척들도 삼칠(21일)이 지나기 전엔 금줄을 넘어 집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새 생명이 출생한 공간과 시간을 관장하는 건 삼신할머니였고 그 삼신할머니를 떠받들며 해산구완을 하는 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해산하고 삼칠이 지날 때까지의 금기사항도 많아서 집안식구들은 살얼음판 걷듯 매사에 조심하며 산모와 아기의 무탈을 기원했다.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은 출입을 금했고 집안에 못을 박는 일도, 닭이나 개를 잡는 일도 금기였다. 안마당에 빨래도 널지 않았고 비린내 나는 생선이나 노린내 나는 고기를 굽는 일도 못하게 했다. 호랭이같은 시어머니, 잔소리꾼 시아버지도 산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는 며느리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며느리 산후조리와 신생아의 건강한 발육이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의약이 발달하고 생활양식이 변천하면서 우리의 전통적 해산구완 산후조리는 비과학적 미신의 찌꺼기로 몰려 소멸되고 현대적 '산후조리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들이 질병에 감염돼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해산방에서 쫓겨난 삼신할머니의 노여움을 산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盧和男 논설위원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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