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장

삼척은 조선왕조가 태동한 곳이다. 조선왕조의 건국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 실현되었지만 그 터전은 4대조인 목조 이안사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용비어천가>에도 목조 이안사로부터 왕조의 터전이 잡혔다고 기록되었다. 전주의 호족으로 생활하던 목조 이안사는 관기(官妓)를 놓고 전주의 지주(주의 장관)와 싸웠고 지주가 군사를 동원해 목조를 헤치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삼척의 활기리로 이주하게 된다. 목조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터를 잡고 생활하던 중 아버지 이양무장군이 돌아가시고, 어느 도승과의 인연으로 5대 만에 왕이 태어날 명당자리를 구하게 되며, 예언대로 5대만에 왕이 탄생한 것이다. 그가 바로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이다.

삼척은 조선왕조가 태동한 곳이기도 하지만 고려왕조가 멸망한 곳이기도 하다. 1392년 7월 17일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보위에 오른 이성계는 왕위를 넘겨준 공양왕을 공양군으로 강등하여 원주로 추방하고 7월 20일 전국의 왕씨들을 모아 강화도와 거제도로 유배보냈다. 얼마 뒤 공양왕을 간성으로 옮겼고 1393년 2월 15일 국호를 ‘조선’으로 공포하였으며, 1394년 3월 14일 공양왕과 두 아들을 삼척으로 유배시킨다. 이 때 강화도와 거제도에 유배시켰던 왕씨들을 모두 바다 속에 수장(水葬)하고, 고려 왕조의 후손이 아닌 왕씨는 어머니의 성(姓)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양왕과 두 아들은 삼척으로 유배온 지 한 달 뒤인 4월 17일 역모죄로 처형했다. 이렇게 교살당한 공양왕과 두 아들의 시신을 삼척지역 주민들이 몰래 암장한 것이 바로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의 공양왕릉이다. 궁촌(宮村)이라는 지명도 임금이 살았던 곳이라서 그런 이름이 만들어졌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족과 왕씨들을 살해한 것이 마음에 걸려 1395년 2월 국행수륙재를 베풀도록 한다. 왕씨 일족이 살해된 지역의 사찰인 강화의 관음굴, 거창의 견암사, 삼척의 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열어 이들을 천도하도록 한 것이다. 수륙재(水陸齋)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국가 주도로 한다고 해서 국행수륙제라고 한다.

2005년 삼화사에서 국행수륙재가 개최되었다. 1395년 설행되었던 국행수륙대재를 원형대로 복원한 형태라 학술적·예술적으로 대단히 값진 문화유산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삼화사에서는 매년 10월 행사를 이어오면서 2008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자 학계의 권위자들을 모시고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태조 이성계가 국행수륙재를 베풀도록 한 목적, 즉 고려 왕족과 왕씨 일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대형 이벤트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의 화해’라는 테마로 전주이씨와 왕씨 문중의 만남과 화해를 위한 다채로운 이벤트, 한걸음 더 나아가 갈등관계의 여러 계층이 참여하는 대동화합의 국민축제가 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 계층간 세대간 갈등과 증오가 깊어가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해원상생(解寃相生)의 바람이 필요하다. 삼화사는 국민화합의 상징사찰이다. 삼화사(三和寺)라는 이름도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였지만 전쟁으로 상처받은 삼국 국민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삼화사의 국행수륙대재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아픔을 씻어주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명실상부한 국민축제로 우뚝 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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