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기슭에 콩을 심었더니/잡초만 무성하고 콩싹은 드문드문/이른 새벽 거친 들에 나가 밭을 매고/달빛 따라 괭이 메고 돌아온다/좁은 들길 풀이 무성해/저녁 이슬에 바짓가랭이가 젖지만/옷이 젖은들 어떠랴/농사나 탈없이 잘 되었으면" 귀거래사 읊조리며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은 스스로 밭갈고 씨뿌려 가꾸면서 그렇게 노래했다. 밭둑에 지팡이 꽂아놓고 밭고랑 타고앉이 김매고 북주다가 힘에 겨우면 허리 펴고 일어서서 평소 즐기던 노래 한 수로 피로를 푸는 생활, 그는 죽을 때까지 농사일을 사랑했다.

난리통에 가족과 헤어져 양자강 유역을 떠돌던 당대 시인 두보도 만년에 성도 교외 완화계에 조그만 초당을 엮고 두어떼기 밭을 가꾸면서 난생처음 행복을 맛본다. "가슴병 앓은지 오래돼/시냇가에 조그만 초가 짓고/어수선한 세상 피하니/자못 즐거워 내 분이라/길손이 찾아와 내집에 드니/아이 불러 갈건을 바로 쓰고/손수 가꾼 푸성귀 드물다만/몇 잎 뜯어 상에 올리는 건 정때문이지"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 온화계에서 농사지으며 산 몇해동안 두보가 쓴 시는 유난히 다사롭다.

월파 김상용의 전원시 역시 독자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노래는 공으로 들으려오/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자셔도 좋소/왜사냐건/웃지요" 저 이백의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편하다(笑而不答心自閑)'는 싯귀를 연상케 하는 노래다. 농경민족의 핏줄에 녹아흐르는 농사일과 전원에 대한 향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유전형질과도 같다. 흙 속에서 씨가 싹트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의 위대한 섭리와 생명에 대한 외경을 느낀다.

농협에서 올해도 주말농장을 분양한다. 대여섯평 남짓한 밭을 가꾸면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취미도 없지싶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