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순행하다가 지방의 관청이나 부호의 집을 빌려 잠시 머무는 곳은 행재소(行在所)라 하고, 임금이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이나 왕세자의 비(妃)를 맞아들이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궁전은 별궁(別宮)이라 한다. 왕들이 피서(避暑) 피한(避寒) 요양을 하기 위해 정궁(正宮) 외에 따로 지어 놓은 궁궐은 행궁(行宮) 또는 이궁(離宮)이다.

고려 시대에 최씨 정권은 천도한 강화도에다가 정궁 외에 수 많은 행궁 이궁 별궁을 지어 놓았다. 조선 시대에 태종은 부왕인 태조를 위하여 덕수궁을 지었고 세종도 이 전례를 본받아 부왕 태종을 위하여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 두 궁궐은 이궁이다. 지금 청와대 자리도 고려 숙종 이래 개경의 이궁터였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이궁은 왕이 통치력의 효과적인 파급을 위해 지방의 요지에 지어 놓고 때때로 머물던 곳이었다는 면에서 다른 궁궐에 비해 정치적 성격이 짙었다. 춘천 봉의산에 있었던 이궁이 그런 경우다. 조선 인조 24년에 춘천부사 엄황(嚴愰)이 지어 놓은 문소각(聞韶閣)을 고종 27년에 유수(留守) 민두호(閔斗鎬)가 왕명으로 확장하여 조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임금의 피난처로 삼는 이궁으로 고쳤다.

실제로 임금이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춘천 봉의산에 이궁이 있었다는 사실은 춘천이 군사적 요충지요 봉의산 남사면이 배산임수의 명당길지라는 점을 증거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 문소각 즉 춘천이궁은 남아 있지 않고, 궁궐로 들어가는 앞문인 위봉문(威鳳門)은 봉의산을 조산이나 진산이 아니라 마치 앞남산 모양으로 여기는 듯 뒤돌아 서 있으며, 문루(門樓)인 조양루(朝陽樓)는 소양강을 건너가 버렸다. 위봉문은 특히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다. 이제 위봉문과 조양루 등 춘천이궁의 옛 흔적을 제대로 관리하여 강원도 문화재가 '황성옛터'가 되는 금찍한 일은 막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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