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사람들은 고통을 참는다. 한나라 경제의 아들로 학문이 깊고 세상 보는 눈이 밝았던 유덕이 그런 사례를 밝혀 기록으로 남겼다. "우임금이 황하를 소통시켜 흐르게 하고 양자강을 파서 아홉 굽이의 물길로 통하게 하며 다섯 호수의 물을 동해로 흐르게 할 때 백성들은 고된 노역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노역으로 생긴 이익이 백성에게 되돌아왔기 때문이다."(設苑, 君道편)

나라의 정사를 맡은 재상이 백성을 편히 살게 하기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설원(說苑)에는 이런 삽화가 또 있다. 전국시대 어느해 겨울, 정나라 재상이 수레를 타고 냇물을 건너는데 한 백성이 바지를 걷고 물을 건너며 떨고 있었다. 재상이 그를 수레에 태워 함께 건너며 겉옷을 벗어 감싸주었다. 그 소문을 들은 진나라 대부 숙향이 이렇게 평가했다. "재상까지 된 자가 어찌 그리 막혔는가. 훌륭한 관리라면 일을 맡은지 석 달 안에 잘못된 물길을 수리하고 열 달이면 필요한 곳에 다리를 놓아 사람과 짐승이 물에 젖지 않고 건너게 해야 하거늘."

미국의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가 세계 79개 주요 금융거래국 은행을 상대로 재무건전성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이 최하위 수준인 70위에 머문 것으로 평가했다. 외환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하고 공적자금 160억원을 쏟아부었는데도 우리나라 은행의 재무상태가 허약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분담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16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혈세가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퍼부어질 때 말없이 참고 견딘 국민들이다. 5년 고통이 이익으로 돌아오기는커녕 차가운 개울물을 발 적시며 건너야 할 형편인데도 밑빠진 독에 물 퍼부은 관리들은 아무 말이 없다.

盧和男 논설주간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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