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봄봄’의 작가 金裕貞.

金裕貞(1908∼1937)의 작품에는 유난히 봄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리고 이 봄은 ‘봄내’곧 ‘춘천’으로 연결된다. 金裕貞의 고향은 춘천시 신동면 증리 속칭 실레마을이다. 금병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에 들어서면 향토적이고 해학적인 언어로 빚어낸 푸근하고 생생한 고향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실레마을엔 생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았으나 최근 생가 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이 마을 입구에 아직까지 흙마당을 가진 시골 간이역인 신남역이 있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오는 경춘선은 풍경이 좋아 기차여행 코스로 유명한데, 이 역 바로 앞으로 난 골목으로 접어들면 金裕貞의 생가가 나온다. 고향이자 여러 소설과 수필의 무대가 된 이곳을 답사키위한 문학기행코스 역시 소문나 있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실레마을은 金裕貞이 1930년대에 묘사한 춘천의 산골 봄 분위기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그 때보다 집이 더 들어서고, 길이 조금 더 넓어지고 시멘트로 포장이 되긴 했지만 작고 귀여운 전원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金裕貞은 1908년 1월 11일 춘천시 신동면 증리 427번지에서 한학자이며 만석꾼인 金春植과 어머니 심씨의 8남매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6세에 어머니, 8세에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며 그의 인생 행로는 변화를 겪게된다. 한학을 배우다 12세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27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맏형의 사업 실패 등으로 가세가 기울자 학교를 중퇴하게된다.

1년여간 객지를 방황하며 늑막염이 도지자 1931년 형수와 조카가 살고있는 실레마을에 다시 왔다. 병마와 가난 그리고 박녹주와의 사랑의 아픔 속에서도 점차 몸을 회복, 이듬해(24세) 브나로드 운동에 가담, 이곳서 농우회를 조직하고 ‘금병의숙’이라는 야학당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에 들어갔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온 김유정은 셋방을 얻어놓고 소설 창작에 몰두해 35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37년 3월 29일 심한 폐결핵으로 요절할때까지 2년여간 집중적으로 당시의 계몽적이고 감상적인 농민문학을 벗어나 ‘산골나그네’ ‘금따는 콩밭’ ‘동백꽃' ‘만무방’ ‘솟’ ‘총각과 맹꽁이’ 등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金裕貞은 29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주옥같은 단편소설 31편을 남겨 1930년대 한국소설문학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편 '동백꽃'은 민속적 소재인 투계를 소재로 비참한 현실을 해학으로 극복해나가는 자세를 작품 정신으로 하고있다. 금광 체험을 바탕으로 가난속에서도 일확천금의 꿈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금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희화적으로 형상화한 ‘봄 봄’등 한결같이 친숙한 장면이 묘사된다.

‘산골나그네’등 주요 작품에는 증리, 아랫말, 거문관이, 백두고개, 신연강, 덕냉이, 응고개, 수어리골 같은 토속적 명칭들이 고루 등장하며 실레마을이 지닌 지역성을 드러내면서 인물의 활력을 주고있다.

金裕貞은 토속적인 언어와 향토색 짙은 서정으로 1930년대 초라할 대로 초라해진 농민의 삶을 웃음으로 치환시켰다. 자유자재로 구사한 토속적인 언어가 줬던 웃음은 21세기 좌절에 빠지기 쉬운 현대 도시인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은 주로 산골을 배경으로 할 뿐 아니라 강원도의 아라리나 구성진 소리 가사들이 등장하고 방언을 구어체로 생동감있게 묘사한다. 비속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등 강원도의 향토성과 토속성을 간직하고 있기에 강원도 문단이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全信宰 한림대학교 교수는 "그의 소설 등장 인물 대부분은 따라지 신세이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박한 인물과의 만남은 요즘과 같이 삭막하고 피로한 현실에서 더욱 대견하게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朴남철 원주 상지영서대학 교수는 김유정은 실레라는 '작고 귀여운' 전원을 우리 문학의 의미심장한 주소지로 위치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1930년대 농촌의 전형으로 삼아 당시 민중들이 맨 몸으로 겪어냈던 삶의 아픔을 폭넓게 응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소설은 영화로, TV물로 제작돼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땡볕’(1984년, 하명중 감독) ‘봄 봄’(1969년, 김수용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춘천에서는 金裕貞의 문학정신과 작품세계를 기리고 계승하려는 다양한 활동이 봄과 가을에 주로 펼쳐지고 있다.

강원도민일보사는 한국 단편소설의 새 장을 김유정의 문학서 찾는다는 취지로 ‘김유정 소설문학상’을 제정해 촉망받는 작가를 배출했으며, ‘김유정 청소년 백일장’을 해마다 가을 고향 현지 산국농장서 열어 뛰어난 문사들을 발굴하는 등 제2, 제3의 김유정을 기대하고 있다. 매년 3월 29일 추모일을 맞아 춘천지역 문인들은 김유정의 밤 행사를 갖고 되새긴다. 4월엔 실레마을을 둘러 친 금병산을 등반하는 문학과 자연의 만남 행사가 성황리에 열린다.

김유정을 테마로한 지난해 봄내예술제에서는 춘천연극협회와 무용협회에서 창작무대 ‘아내’와 ‘산골’을 각각 무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金裕貞을 기리는 조형물이 시내 몇 곳에 있다.

우선 고향 실레마을에 그의 후학들과 고향 사람들이 1978년 3월 29일 '김유정 기적비'를 세웠다. 금병의숙 자리에는 의숙을 개설할 당시 기념 식수했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의암댐 근처에는 1968년에 건립한 펜촉 모양의 '김유정 문인비'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안고 지키고 있다. 춘천 도심에 자리한 춘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는 책을 읽고 있는 김유정 동상이 세워져 발길을 잡는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향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아쉬운게 현실.

지난해부터 김유정 유적지 조성사업이 본격 착수돼 생가터 복원과 자료관 건립, 조경 단장, 문학관 조성을 뼈대로 한 실레마을 일대를 문화유적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중이다. 춘천시는‘김유정선생 유적지 조성사업’을 추진, 25억여원을 들여 신동면 증리 868~1일대 4천523㎡에 유적지를 조성중이며 올해 말 선보이게 된다.

金裕貞선생이 죽기 11일 전인 1937년 3월 18일 문우 안회남의 본명인 필승에게 보내는 '필승 前'에 보면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중략)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金裕貞의 체취는 오늘도 강원도 땅에서 오롯이 살아나 숨쉬고 있다.

朴美賢 mihyunp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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