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산악인의 성지인 히말라야. 강원산악회는 지난해 10월 16~28일까지 12박13일 동안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번 트레킹에는 李元相 아이강원닷컴 대표이사를 비롯, 도내 산악인 11명이 참가했다. 자연과 인간 종교가 어우러져 독특한 고산문화를 이루고 있는 네팔의 풍물과 만년설이 빚어내는 은빛 파노라마의 세계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註>




우리는 지금 네팔로 간다. 지난해 10월16일 오후4시 15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중간기착지인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나 마음속에 품어온 히말라야 行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산행을 시작, 거반 50년 가까이 국내외의 크고 높다는 산은 제법 찾아 다녔으면서도 늘 가슴엔 히말라야가 자리잡고 있었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 수많은 구도자들이 '나'를 찾아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례지, 삶과 죽음, 인간과 신이 함께 있는 곳 히말라야.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그 꿈을 이루게 됐으니 그 흥분과 설레임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는가. 나는 마치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어린아이처럼 자꾸 창 밖을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방콕에 도착한 일행은 1시간 정도를 기다려 네팔 로얄 에어라인으로 환승했다.(우리나라에서 네팔은 방콕과 홍콩을 거쳐 갈 수 있는데, 직항로는 없고 환승을 해야 한다. 방콕과 홍콩에서 1주일에 4회의 비행편이 연결돼 있다) 비행 내내 내 머리 속에는 히말라야를 알면서부터 그려 온 히말의 만상이 펼쳐졌다. 산악잡지를 통해 본 8000m 고봉들의 위용, 해외원정 산악인들이 들려 준 히말의 신비에서부터 시인 최돈선이 소설로 쓰겠다고 했던 히말라야의 독수리 이야기며 브래드피트 주연의 명화 '티벳에서의 7년', 글로나마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사서 읽은 '히말라야의 순례자' 등등.

2시간을 비행해 우리는 네팔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다음 날 밤 1시 40분. 네팔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3시간 15분 느리니까 현지시간은 오후 10시 30분가량 된 듯 싶다.

카두만두 공항의 분위기는 우리나라 60년대와 흡사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3시.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여인숙 수준이다. 더운물 나오는 것 이외에는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찾아가는 즐거움에 비하면 이정도 불편함은 즐거움의 한 부분 일 수 밖에…

현지시간으로 17일 새벽 4시 잠이 깼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비원'이라는 한국식당을 찾았는데 식사준비가 안된 탓으로 라면에 찬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먹으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꿀맛이다.

오전5시30분 우리는 호텔을 출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관문인 포카라로 향했다. 오늘의 일정은 포카라를 거쳐 나야풀, 비레탄티까지 잡혀져 있다. 포카라까지는 일정상 버스를 이용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는 '풍요의 여신'으로 불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발 4130m로 설산 파노라마를 보기위해 전세계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 나름대로 운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에다 코스도 길어 만만한 여행은 아닐 듯 싶다.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카투만두 시내를 빠져 나와 트레킹 기점인 나야풀로 향했다. 나야풀까지는 버스로도 7시간이 넘는 거리다. 차창 밖 이국의 풍물이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을 덜어줬다. 카투만두 시내는 말 그대로 매연 천국이다. 쓰레기는 여기저기 쌓여있고 상인들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앉아 좌판행상을 벌인다. 소들이 마냥 시내를 배회하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 인터넷을 통해 네팔정보를 검색해보니 힌두교도가 전국민의 89%인 이 나라에서는 소고기를 먹지않는단다. 네팔은 세계에서 유일한 힌두왕국인데, 부처의 탄신 성지인 룸비니가 네팔 땅인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매연의 거리를 30분 지나니 말로던 듣던 가파른 고갯길이 나온다.그야말로 구절양장에다 천길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이곳 사람들의 재주가 자연을 닮은 탓인지 그 가파른 산 벼랑에 제비집처럼 민가가 붙어있다. 멀리 보이는 계단식 논밭은 우리나라의 다랑논과 흡사해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에도 정감을 느끼게 한다.

카투만두의 출근시간은 보통 10시. 사람이 차를 끌고 간다 싶을 정도의 만원버스가 마치 고산 등반가처럼 그 가파른 고갯길을 재주 좋게 기어오르고 있다.

3시간을 달려 낮12시쯤 부끌랑이라는 마을에 도착, 점심을 했다. 이곳은 카투만두와 포카라 여정의 중간 지점이다. 1950~1960년대 강릉 가는 길의 대화식당 마을 같다. 점심은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과 달가리로 했다. 달밧은 안남미 비슷한 쌀밥에 감자 완두콩으로 만든 스프 비슷한 것을 섞어 만든 것인데 맛이 괜찮다. 달가리는 우리식으로 치면 짭잘한 야채무침 같은 밑반찬이다. 점심한끼 값은 90루피. 우리 돈으로 1300~1500원 정도다.

식후 밀크티(홍차에 밀크 섞은 맛이 나는 차)를 한잔 하며 시선을 올리니 국내 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아니 그 이상의)한 규모의 설산(雪山)이 보인다. 우리는 점점 안나푸르나 산군(山群)속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갈수록 멀리 보이던 설산 연봉들이 점점 더 크게 보이면서, 웅장함이 신비감으로 다가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설산 중 맨 왼쪽 날카로운 봉이 생선꼬리라는 별칭이 붙은 마차푸차레(6993m). 오른쪽 길쭉한 능선 끝에 우뚝 솟은 봉이 안나푸르나 3봉(7555m)이란다.

오후 3시15분. 포카라까지 꼭 6시간이 걸렸다. 포카라의 대표적인 명소인 레이크사이드는 듣던대로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식량을 구하느라 1시간을 지체해 야간운행이 불가피했다.

포카라에서 다음 목적지는 나야풀. 나야풀까지 가는 길에서 본 마차푸차레의 위용은 우리를 압도했다. 대관령 2배가 넘는 큰 고개를 넘어 1시간30분만에 나야풀에 도착했다. 6시가 넘으니 땅거미가 막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차량이 아닌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헤드 랜턴을 키고 1시간30분을 걸어 롯지(트래커를 위한 숙박시설)에 짐을 풀었다. 쿡(현지 동행 요리사)이 해 온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트레킹 첫날밤을 보냈다.

10월18일. 오늘은 울레리(2050m), 반탄티(2200m)를 지나 고라파니(2850m)까지 가야한다. 고라파니는 다울라기리(8167m)와 안나푸르나 산군의 조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언덕 마을이다.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길의 연속이란다.

오전7시30분부터 트래킹이 시작됐다. 중간 중간 만나는 양떼와 방울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나귀들의 행렬이 자못 목가적이다. 이곳에서 나귀는 고산지대에 짐을 실어 나르는 귀한 운송수단이다. 감상의 느낌도 잠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 지루하고 단순한 계단 길을 무려 4시간30분 동안 걸어야 했다. 울레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강행군을 시작했다. 반탄티에서 고라파니까지는 긴 오르막의 연속이다. 계속해 5시간을 걸어 저녁 6시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오늘 꼬박 11시간 30분을 걸었다.

내일 여정에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푼힐전망대(3200m)가 포함돼 있다. 내일 그곳에 서면 다울라기리(8167m) 투쿠체(6920m) 팡(7647m) 안나푸르나1봉(8091m) 안나푸르나남봉(7219m)이 광대하게 펼쳐질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산은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神)입니다. 그것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입니다'라고 쓴 신영복교수(성공회대)의 글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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