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진

수필가

“개나발!” ‘個나發’이지, ‘개喇발’이 아니다. 되도 않는 정책을 마구 쏟아 놓는 한심한 일부 정치인들의 개나발이 아니다. 맘에 맞는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눌 때나 각종 모임에서 술을 들기 시작할 때 주인공이나 연장자가 하는 건배 구호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배사가 아니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의 앞 글자만 따서 하는 깔끔한 건배 구호다.

나의 건배 구호는 “얼씨구절씨구”가 단골이다. “저가 먼저 ‘어얼씨구!’ 하면 여러분은 ‘저얼씨구!’로 화답해 주기 바란다면, 다들 리듬 맞춰 척척 잘한다.

건배 구호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건배!”와 “건강을 위하여!”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도 ‘간뻬이(乾杯,乾盃)’, 일본 사람들도 ‘간빠이’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첫잔은 조금씩 마셔야 위도 대비를 할 텐데도 꼭 비워야한다는 철칙을 지키는 주당들이 많다. 乾자가 마를 건자라서 그런지, 乾盃가 ‘잔을 비우자’는 뜻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친구 한 녀석은 첫잔은 잔이 크든 작든 청탁 불문하고 완전히 비우고, 잔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서 한 방울도 안 남았다는 증거로 탁탁 털어 보인다.

중국 사람들의 ‘얌센(飮盡)-다 마셔 버리자’는 영향을 받았을까, 미국사람들의 바텀스 업(Bottoms Up)-‘잔 바닥을 위로’ 탓일까? ‘건강을 위하여’도 좀 아이러니컬하다. 주당치고 한두 잔에 그치는 일은 별로 없고 내장이야 곤욕을 치르든 말든 마구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까지 미련을 떨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건강을 위하여’란 건배구호는 이태리, 프랑스, 독일 사람들도 애용하고 있다. ‘알라 살루’(Alla Salute), ‘아 보트로 상테’(A Votre Sante), ‘프로지트’(Prosit)라 한다. 이들은 건강을 위해 절주할까? 이 사람들에 비해 영·미 쪽 사람들은 ‘즐겁게 마시자’가 즐겨 쓰는 건배구호다. 영국 사람들은 ‘치어리오’(Cheerio), 미국 사람들은 ‘치어스’(Cheers)나 ‘치어 업’(Cheer Up) 이다.

우리말이 빼어나서일까, 우리민족이 문학적 기질이 뛰어나서 일까, 날이 갈수록 우리말 건배 구호는 참으로 기발하고 다양해진다.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 ‘당신 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면서 살자. ‘지화자’-지금부터 화끈한 자리를 위하여, ‘니나노’-니랑 나랑 노래하고 춤추자. ‘세우자’-세상을 세우고, 우리경제도 세우고. 자기 뭐도 세우자. ‘조통세평’-조국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진달래’-진정코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이사우’-이상은 높게, 사랑은 깊게, 우정은 넓게. ‘도밀끌’-도와주고 밀어주고 끌어주자. ‘참베즐’-참고 베풀고 즐겁게 살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구구 팔팔 이삼 사’-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 죽자. 좀 낡은 구호로는 ‘위하여’여당의 건배 구호, ‘위하야’-야당의 건배 구호. ‘위해서’-서울대동문들의 건배 구호, ‘위하세’-연세대 동문들의 건배 구호, ‘위하고’-고려대 동문들의 건배 구호들도 있다.

이밖에도 날고뛰는 건배구호가 많을 것이다. 친구야! 그동안 우리가 마신 소주가 7톤 트럭 한 차는 넘을 거 아닌가. 우리 몸은 단하나, 이제라도 각오를 새롭게 해보세. 그래야 ‘개나발’할 것 아닌가. ‘초가집!’, ‘재건축!’, ‘변사또’하세.- 초지일관 가세, 집으로. 그리하여 재미나게 건강하게 축복받으며 사세.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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