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살리고 수입도 2배 늘었어요"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청일주말농원 鄭千根씨.

횡성읍에서 441번 지방도를 타고 청일면 소재지를 8㎞쯤 지나 닿는 이곳에는 연일 계속되는 맹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깊은 잠에 빠진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강함이 넘쳐 흘렀다.

서울 해오름교육생활협동조합이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실시하는 환경교육 프로그램‘나를 살리는 들살이’가 한창이다.

마냥 신기한듯 두 눈을 반짝이는90여명의 초등학생들에게 환경과 생명의 중요성을 설명하느라 신이 난 주인 鄭千根씨(55)의 입에서는 연실 뽀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千·根.

농사를 업으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에게 기막히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작물이 사람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건강한 부모가 건강한 아이를 낳아 키우듯 알찬 열매는 건강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열리는 것이지요.”


■ 오늘이 있기까지


鄭씨는 10여년전부터 일체의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철저히 환경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더욱이 대개 2∼3개의 작물을 집중 재배하는 여느 농가와 달리 감자, 고추, 배추, 당근 등 얼추 세어 보아도 10여가지에 이르는 작물이 자란다는 1만4천여평 농장을 보고 있자면 그의 부지런함이 한눈에 느껴지고도 남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철들자마자 농사를 배웠다는 鄭씨. 당연한 일이겠지만 鄭씨도 처음부터 환경농업을 한 것은 아니다. 70년대 鄭씨는 누구보다도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해 농사를 지어오던 '평범한' 농민에 불과했다.

그가 환경농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농약때문. 그 시절 횡성지역에서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호프재배가 유행이었다. 호프재배를 위해서는 농약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는데 일정시기가 지나자 웬만한 양으로는 병해충을 완전히 잡을 수 없게 됐다는 것. 당연히 해마다 더 많은 농약이 필요하게 됐다.

“많이 치면 칠수록 좋은줄 알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해마다 양이 많아져 나중에는 '들이 붓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70년대 후반, 그는 심각한 신체적 이상을 느끼게 된다. 농약을 치다보면 몸에 피로가 느껴지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시간이 짧아져 나중에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는 것.

“이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그는 국내 최초의 유기농업조직인 ‘正農會’에 참가, 몇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88년부터 본격적인 환경농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몇배로 늘어난 일거리로 몸은 파김치가 됐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마음도 지쳐갔다. 이웃 농가는 물론 행정기관에서도 그를 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참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일에 매달렸지요.”

숱한 어려움을 겪은 끝에 그는 ‘환경농업은 꾸준한 연구와 부지런함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실감하며 마침내 92년부터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완전히 끊는데 성공했다.


■ 鄭씨의 환경농업

鄭씨가 환경농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준비기간이다. 땅심이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화학비료와 농약을 중단하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뻔한 이치. 때문에 4∼5년의 전환기 동안 사용량을 줄여가며 땅에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땅심을 높히는 사전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가 땅심을 높이고 작물의 생장을 돕기위해 사용하는 것은 유기질 비료 단 한가지.

가축의 분뇨와 톱밥, 쌀겨, 깻묵, 농사 부산물에 미생물의 활동을 돕기 위해 막걸리를 섞어 숙성시킨 천연비료다. 작물의 파종전 이 유기질 비료를 한차례 시비하고 깻묵, 쌀겨 등을 탱크에서 발효시킨 청초액비를 가끔 뿌려주는 것 외에 다른 비료나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초제마저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제초제 없이 짓는 1만4천여평의 농사, 물론 몇십배의 땀과 인내가 요구되는 일이지만 그 넓은 밭의 김매기를 일일이 손으로 하는 것도 鄭씨에게는 이젠 자연스런 일이 됐다.

鄭씨의 농사철학을 엿보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그는 단 한차례 시비하는 유기질비료마저 충분히 주는 법이 없다.

“모자람 없이 모든 것이 풍족한 온실속에서 자란 아이보다는 부족한듯 싶게 자란 아이들이 더 끈질기고 진취적인 법입니다.”

조금 모자라게 영양분을 공급해줄때 작물은 오히려 그것을 섭취하기 위해 더 튼튼하고 긴 뿌리를 내리더라는게 수십년 농사경험을 통해 체득한 鄭씨의 깨달음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환경농업을 한다고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초기에는 약간의 수확량 감소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꾸준히 흙을 보살피면 곧 이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鄭씨는 감자 2천평, 고추 1천500평, 배추 2천평, 당근 1천500평, 포도 800평 등 1만4천평의 농원에서 10여가지의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초기에는 환경농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 판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무공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크게 늘며 정농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전량 출하, 연간 5천만∼6천만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환경농법을 도입하기 이전 소득 3천만원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물론 이처럼 소득이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농산물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덕분.

지난해 감자값이 떨어져 일반감자가 20㎏들이 1상자에 5천원선까지 떨어졌을때도 鄭씨의 감자는 1만5천원에 전량 팔려 나갔다. 환경농업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소득증대의 또 다른 요인은 생산비 절감에 있다. 생산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에 따라 비용이 고스란히 절약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면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아 생기는 부담은 없을까.

鄭씨에 따르면 유기농으로 기른 작물은 일단 생존력이 강하고 표면이 거칠어 해충들도 싫어하는데다 오랜기간 농약을 치지 않으면 흙에 유기물이 풍부해지고 자연히 천적도 생겨 결국 더 효과적인 방법.

鄭씨는 무엇보다 ‘흙의 건강상태’를 중요시 한다. 천연비료조차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것도 필요없는 양분이 축적돼 영양상태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鄭씨는 현재 농작물의 질은 물론 토양의 오염상태를 엄격한 기준으로 판정하는 ‘친환경 농산물 품질인증 농가’로 선정돼 있다.


■앞으로의 계획

鄭씨가 농사일과 함께 주력하고 있는 것이 무공해 농산물 식당.

입소문을 타고 부수입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 식당을 그는 소비자들과의 직거래를 위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농원 한 켠에 숙박시설을 마련, 도시의 가족단위 탐방객을 적극 유치할 계획. 그것도 1회성 방문이 아니라 도시주부들이 ‘시골에 친정이 생겼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거래선을 확보하고 현재 택배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리라는게 그의 기대.

鄭씨의 또 다른 목표는 완전한 환경농업을 구현하는 것.

현재 천연비료의 재료로 이용하는 가축분뇨의 경우 그 가축이 먹는 사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무공해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의 분뇨를 이용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땅지킴이 농부 鄭千根씨는 이를 위해 비료를 비롯해 농사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자신의 농원에서 자급자족하고 일체의 부산물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환경농업의 원대한 꿈을 설계하고 있었다.

趙眞鎬 odyssey@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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