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雪國), 철원에서 한탄강 트레킹을 만끽하세요."

지난 7, 10일 내린 폭설·대설이 만년설(萬年雪)처럼 소복히 쌓인 눈의 나라 철원의 한탄강에는 태초의 신비감이 빼어난 풍광에 휩싸여 있다.

수북한 눈 밑에서 한탄강 강심을 융단같이 뒤덮은 한척의 얼음 아랜 저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건너던 황급함과 12세기 뒤 총부리를 들이대고 밀고 밀리던 6·25전쟁의 참혹함까지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뽀드득, 뽀드득…” 정적을 깨는 발걸음 소리는 이제야 내가 신사년(申巳年) 새해 벽두에 와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탄강 협곡에는 칠만암 마당바위 병풍바위 등 기암절벽들이 잔설(殘雪)의 홑이불을 겹겹이 덮고 우뚝 강심을 내려보며 겨울운치를 더한다.

트레킹(trecking)... 무얼 찾아 떠나는 것일까.

임꺽정이 관군(官軍)을 피해 웅거했다는 고석정 바위를 휘감아 도는 한탄강. 군탄교∼고석정은 8km 구간. “뽀드득, 뽀드득…” 눈덮인 얼음·오솔길을 7시간쯤 걷다 보면 거대한 바위 고석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석정∼승일교∼직탕은 6.5km 구간.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고/ 짐승들 짝지어 진종일 넘고/ 강물 위에서는 네가 목욕하고/ 그 아래서는 내 고기 잡고...’란 신경림의 시 ‘승일교’가 얼음 밑에서 꿈틀거린다.

높이 35m, 길이 120m, 폭 8m로 지난 58년말 준공된 게 승일교다. 장흥리∼갈말읍을 잇는 승일교는 지난 48년 북측이 유럽공법으로 착공했다. 이후 6·25전쟁으로 중단됐고 지난 58년 우리가 준공했다.

남·북 합작교로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합쳐 교명(嬌名)을 승일교라 지었다는 그럴싸한 얘기도 있다. 당시로서는 큰 규모로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란 애칭도 갖게된 이 승일교는 영화 ‘빨간마후라’의 마지막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누렸다.

현재 승일교는 지난 99년 7월 개통한 166m의 붉은색 철제 ‘한탄대교’에 가려 역사의 유물로 남게됐다. 현재 철원군이 승일교를 북한이 지은 노동당사, 일제시대에 지어진 암정교와 함께 근대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승일교를 지나 직탕에 이르면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곳에는 SBS TV드리마 ‘덕이’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직탕폭포가 있다. 한탄강 상류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직탕폭포는 철원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꽁꽁 얼어붙은 5m 높이의 직탕폭포수도 볼만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털다보면 “꼬르륵, 꼬르륵…”시장기가 돈다. 허기를 달래려면 갈말읍 초가집(033-452-2948)의 손두부가 제격이다. 동송읍 향맥가든(033-455-8000)의 꿩요리와 꺽정가든(033-455-3128)의 산채비빔밥도 좋다.

시간이 나면 1박2일 코스로 겨울의 진객(珍客), 철새들도 볼 수 있다. 쌍안경 등 간단한 탐조장비만 있으며 경외감과 탄성을 절로 자아내는 두루미와 기러기 독수리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들의 군무(群舞)를 보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이들 트레킹 코스는 험준한 구간이 없어 방한복과 모자 등산화 장갑 아이젠 로프 등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가족단위로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柳浩一 leele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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