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호

춘천 동부교회 담임목사

제가 미국에 살 때 한국하고 어느 나라하고 축구를 하는데, 한국 선수가 다 진 경기 같이 되었는데 골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좋아서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골 들어간 장면을 보았습니다. 아니 이 극적인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와서 보면서 던진 말이 “어느 쪽이 우리 편이야”하고 묻습니다. 아이들도 ‘우리 편’을 찾아 응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조국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한국을 생각한다는 면에는 기분이 좋지만 이들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이라 가르쳐야 할지….

현해탄 넘어 일본 사람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근대 일본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으로 애국자로 추앙합니다. 그러나 현해탄 이쪽 한국인에게는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를 강탈한 원흉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영웅은 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입니다. 아마 일본인들에게 안중근은 영웅을 죽인 폭도일 것입니다. 현해탄을 가운데 두고 애국자와 폭도가 달라진다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가, 여기서 경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애국애족이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달라지는 애국애족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 마음의 애국애족이라면 결국 애국애족을 부르짖으면 부르짖을수록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진다는 것입니다.

1981년 제 12대 주한 미국 대사로 워커대사가 한국에 부임하였을 때, 미국 정부가 한국의 신 군부를 지지한 것으로 인하여 반미감정이 고조에 이를 때, 그가 어느 날 기자와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지구촌 시대에 민족주의는 서로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이 말로 말미암아 한국인의 감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지식인들은 워커대사에게 그가 한 말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는 자기 말이 옳은 말이기에 철회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활동하던 노벨 문학상 후보에 한국인으로 처음 오른 ‘순교자’의 저자 김은국 씨가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한국인이 말하는 민족주의란 ‘nationalism’이 아니며 영어의 내셔널리즘은 한국인이 말하는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미국은 한 번도 외세에게 지배를 받아보지 못해서 그들이 말하는 내셔널리즘이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강대국의 자기 옹호일 뿐입니다. 반면에 한국인이 말하는 민족주의란 늘 외세에 침략을 받은 민족이기에 강대국으로부터 자기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을 지키고자 한 본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영어의 내셔널리즘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민족주의이든 내셔널리즘이든 둘 다 배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애국은 무엇입니까?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태어난 민족이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내가 현해탄 이쪽에 태어났기에 무조건 이쪽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동일하게 애국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성공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3번 우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번은 죽은 나사로 때문에 마지막 한번은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시며 조국을 위해 울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였다면 주님이 생각하는 조국은 어디일까?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한국을 응원한다는 아들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의 좋은 마음이 시작은 한민족으로 하였지만 열심히 응원하는 그 마음의 종착역은 황인종도 백인종도 흑인도 아닌 일본도 이북도 세계 모든 나라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6월 호국의 달에 즈음하여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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