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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사람들

박순진 2012년 06월 15일 금요일
   
▲ 박순진

대한성공회 춘천 나눔의집 원장

2008년 2월,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새 봄을 꿈꾸던 종교인들이 모여 출정식을 했었다.

이름하여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 100일 도보 순례!’

나도 부족하나마 잠시 도보 순례에 참여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었고, 지금도 그때 느꼈던 바람과 새 울음소리며 소리 없이 묵묵히 걷는 도반들의 발걸음이 떠오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가 누리고 살아왔던 개발이익에 대한 성찰을 위해 도보순례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외세의 수탈과 억압의 근대사, 군부독재의 암울한 현대사를 거치며 힘없는 사람들의 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부와 성공을 갈망하는 욕망이 마음의 심연에서부터 우상이 되었고, 급기야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다른 편법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삐뚤어진 가치 때문에 힘없는 자연과 약자들이 희생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대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가운데 돌이킬 수 없는 역사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경제력이 지배하는 시대 즉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철학과 가치를 이야기한다한들 이것도 모두 자본의 논리로 귀결되어 버린다. 성서에서 말하는 맘몬이 지배하는 시대에 모두가 종노릇하는 지금, 진리의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사무엘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왕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백성을 ‘가둬놓고 다스리길’ 원하지만, 하느님은 인생이라는 순례의 길을 사람들이 ‘자유로이 걷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좋다. 길 위에서 아름다운 만남을 갖고 더불어 진리를 논하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길을 묻는 삶이야말로 멋지지 아니한가. 우리가 명확한 것, 손에 잡히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만 조금 뒤로 하면 자연과 약자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다. 구도(求道)의 삶에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

처음부터 다시 ‘길’을 걸으며, ‘길’을 찾자. 더 깊이 성찰하고 공부하자. 그리고 서로 함께 연대하자. 한 사람 안에 이율배반적인 자기 모습을 담고 있다. 선과 악의 경계 없이 모두 그 안에 있다. 고정되어 있는 선함이란 없다. 선함이 참으로 선하려면 스스로 성찰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과 공간에 사로잡히는 순간 이미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길 위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사라지고, 내가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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