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장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의 전망에 의하면 인류사회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웨어⇒ 휴먼웨어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감성 중심의 이야기가 지배하는 휴먼웨어 시대는 결국 무형문화 중심의 사회라는 말이다. 특히 21세기 통신과 방송, 인터넷 영역의 기술과 서비스 산업이 융합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패러다임은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건축물 미술품 등 원형을 생명으로 여기는 유형문화재는 변용이 불가능하지만 춤이나 노래 같은 무형문화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적절한 변용이 가능하고 정보화·디지털시대의 문화콘텐츠로 가장 훌륭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세계 각국의 문화정책 또한 유형문화재에서 무형문화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2001년부터 우리나라는 세계무형문화유산 정책을 선도해왔다.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을 선정하여 아리랑상을 주고, 세계박물관대회에서 처음으로 무형문화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세계무형문화유산 학술지 간행을 우리나라에서 담당하고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다양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전주에서는 아시아·태평양무형문화유산축제를 개최했고, 서천군은 ‘한산모시짜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한산모시축제를 열었으며, 강원도에서는 ‘강원무형문화대제전’을 개최했다. 강릉시장이 대표로 있으며 강릉시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이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정식 승인되어 강릉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세계무형문화 정책의 선도국가로 우뚝 서고,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가지만 지적하면 조사활동과 창조적 계승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무형무화유산의 조사활동은 원석(가공하지 않은 보석)을 캐내는 작업이다. 조사자료가 많을수록 민족문화의 자산이 많아지는 것이고,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농촌마을의 어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체계적인 조사활동을 진행하는 자치단체는 몇 곳 되지 않는다. 그 다음이 원석을 창조적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무형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에 열을 올렸다. 낮에는 그들의 전통공예기술을 선보이며 상품을 팔고, 밤에는 그들의 전통춤과 인형극 등을 보여주면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이 지극히 취약하다.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판소리, 남사당놀이 등 14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전국 자치단체마다 독특한 무형문화재를 상당수 가지고 있지만 상설공연을 하는 관광상품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자치단체마다 관광상품과 일자리창출에 많은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무형문화유산 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먼저 무형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그것에서 감동적인 콘텐츠를 개발하여 무대예술작품을 만든 다음 야간에 비어있는 문예회관이나 문화원의 공연장을 상설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관광객들에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겐 기능보유자를 비롯하여 연출, 무대 음향 조명 등의 분야를 담당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문화를 소재로 새로운 감각의 뮤지컬 ‘송성가무쇼’를 만들어 하루 2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중국 항주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