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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곽영승 2012년 07월 13일 금요일
   
▲ 곽영승

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행정학박사

현대사회는 풍요롭다. 물질, 정보와 지식이 넘쳐난다. 그러나 혼돈과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허무와 무력감-저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아파트는 없고, 쓰레기통에는 먹다버린 피자가 썩어가지만 내 아이들은 피자 한 조각 먹어보지 못한다. 이렇게 살아야하나?-이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 같은 천박한 인사말이 풍미한다. 경제는 발전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성숙 상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들이다. 오로지 돈이다. 물질적 풍요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착각하나 행복은 성공, 물질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각자의 직업에는 다 사회, 인간에 대한 소명이 있기 마련이지만 공직자 언론인 정치인 교사 의사 판검사 등 소명의식이 특히 더 필요한 직업군에서도 사명감이 떨어지고 있다.

물질이 정신, 감성을 앞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상당히 좋아했던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복불복게임을 하면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자란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약자의 아픔에 눈을 돌릴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며, 불행한 이웃들 속에서 절대로 혼자만 행복할 수 없다. 어떻게 나만 아니면 될 수 있겠는가? 공감과 연민의 정이 사라진 사회, 공공예절이 사라지고 무례한 행동을 사과할 줄 모르는 사회는 절망을 극복할 수 없다.

연대(連帶)와 사랑이 사라지면서 고독 우울증 정신병 마약 알코올중독 자살 등이 늘어난다. 우리는 스스로 파편화됐다. 달리기만 할 뿐 생각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죽음을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다. 죽음을 생각하면 경박함을 넘어서고 목전의 이익만을 탐하지 않게 된다. 삶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남의 실수에 관대해진다. 죽음을 생각하면 나에 대한 용서, 남들에 대한 화해와 감사가 늘어난다.

세계화로 인해 국경이 무너지고 자본과 노동의 국가 간 이동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세계화는 지구인들의 상호의존성을 높인 반면 경쟁을 심화시켜 국수(國粹)주의, 외국인혐오 등의 반작용을 초래했다. 이런 부작용은 국가발전, 문명발전에 절대적 걸림돌이다.

우리나라에도 다문화가족이 급속히 늘고 있으나 결혼이주여성들과 그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깨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자 인터넷에는 무례 인격모독 험담 욕설이 분분했다. 극복해야만 할 무지몽매, 저열함이다.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대영제국, 미국 등 역사와 문명, 문화를 발전시킨 나라들은 모두 이민족을 자민족과 가능한 동등하게 대우하며 꿈과 희망, 그 성취를 함께 했다. 다문화 다민족의 장점과 특성이 혼융돼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옹졸한 국수주의를, 편협한 지역주의를, 폐쇄적 학연과 혈연을 과감히 분쇄해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주의로 내가 인정받을 수는 없다. 앞에 열거한 제국들은 모두 다인종 국가로 남을 인정했다.

학교가 직장을 얻는 통로가 돼버렸다. 경쟁에 치인 아이들은 인간이 되는 법,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참된 인간성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으로 평생 그 아이의 삶을 살찌우지만 최고만을 외치는 사회에서는 인간성을 연마하기 어렵다. 남을 인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돈이 학력을 좌우하고 학력이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사회에서는 꿈을 꾸기 어렵다. 서울 강남에 가면 한 채에 수십억원 하는 아파트군이 있고, 바로 앞 도랑 건너로 최빈민층이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가슴에는 절망과 한, 분노만이 쌓일지 모른다. 물질우선의 경박함, 남을 인정 않는 폐쇄성, 연대와 사랑의 붕괴, 풍요속의 빈곤이 우리 모두를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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