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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국민’

이한오 2012년 07월 20일 금요일
   
▲ 이한오

성공회 춘천교회 관할사제 신부

대통령 선거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시끄럽고 산란하다. 특별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다구동성(多口同聲)으로 하는 이야기가 “국민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인데, 아주 듣기 싫고 문제가 많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을 받들겠다”며 국민을 자신보다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아전인수식도 있고, 심지어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국민들의 생각을 감히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들 제각기 ‘국민’을 편의대로 이용하다 보니, 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수억이 넘는다.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정치인들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를 바란다.

첫째, 정치인들의 ‘국민’은 결코 전체 국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들의 뜻은 이렇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어떤 정치인의 ‘국민’에 대해 속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어떤 정치인의 ‘국민’도 결코 전체 국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다수 국민’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라.

둘째는 이른바 그 ‘국민’의 성격이 모호한 점 때문이다. 노무현을 선택한 이들도 ‘국민’이고 이명박을 선택한 이들도 ‘국민’이다. 시간을 달리하면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국민도 있다. 그 국민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모호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국민들을 정치인들은 마치 개념화할 수 있는 실체로 보면서, 국민의 생각을 자신이 대변하듯 한다. 자그마한 지역구의 주민의견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서 ‘국민’을 입에 달고 말할 때마다, 가소롭기까지 하다.

끝으로 ‘국민’은 결코 진리의 잣대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은 섬겨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이끌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국민이라는 이름 뒤에 숨을 때, 국민 자신도 국민이라는 익명 속에 숨는다. 익명의 국민은 대체로 세속스럽고 그 욕망의 수준 또한 동물적이다. 이런 면에서 “국민들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그 ‘국민’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며 경제적 가치에 현혹된 집단이기 때문에 이런 국민들의 뜻에 따르면, 국가와 세상이 동물농장처럼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국민들 앞에서 한 표를 얻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말들의 잔치를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대통령 같은 정치인이이라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때론 국민들을 설득도 해야 할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의 희생과 양보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첨예한 상황에서는 국민의 이름으로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모른척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세 가지만으로도 정치인들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권을 주장하는 모순 속에 놓여 있는 존재들이다. 저마다 자신의 권리와 주장만 내세울 때,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요 정치가의 책무가 아닌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철학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나서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데도 계속 국민을 운운하며 교묘한 여론조작과 잔재주만 부린다면, 그 ‘국민’들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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