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경쟁 아냐… 사람에게 위안줄 것”
25년간 ‘느림의 미학·정교함’ 추구
21일 춘천 미술관서 ‘중국 유학전’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과정이 고되다는 얘기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에게 창작은 ‘산고의 고통’이 따를 정도로 감내해야 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따른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이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세상에 예술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본지는 문학을 비롯해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랑스런 도내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세계와 삶의 애환 등을 들어본다.


 

▲ 이광택 화가가 화실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춘천 출신 이광택(51) 화가의 작품에는 확고한 그의 ‘철학’이 묻어있다. 어느 누구보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화려함보다는 정교함을 중시한다.

“그림은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신념 또한 수십년째 변함이 없다. 이에 상이 내걸린 공모전에는 단 한 번도 출품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오직 고독한 외길 인생을 고수해왔다.

9일 오후, 춘천시 동면 장학2리에 위치한 15평 남짓한 화실에서 천생 화가인 그를 만났다.

잔뜩 어지럽혀진 화실은 다소 산만해 보였지만, 그가 건넨 연잎차의 부드러운 목넘김 만큼이나 편안했다.

화실의 분위기를 대강 살폈을 즈음,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춘천시 삼천동에서 태어난 그는 아직도 유년 시절 형들과 뛰놀던 주변의 동화같은 자연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고교 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학교를 오가다 마주쳤던 자연 풍경은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그리고 싶은 욕구를 마구 샘솟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마주했던 수많은 가로등 불빛과 호수에 비친 밤하늘, 에메랄드 빛으로 물든 작은 연못까지 모든 자연 풍경이 근사하게 느껴졌다”며 “이때 느꼈던 감정은 곧 화가로서의 삶을 다짐하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내내 그림과 동고동락한 그는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학과에 입학했으며, 한국화가인 아내 강선주씨도 만났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해군 장교로 군대에 입대해서도 붓은 절대 놓지 않았다.

대학 시절 그림이 과제를 위한 그림에 그쳤다면, 군 시절 진흙탕을 구르며 고된 훈련끝에 얻은 땀의 가치와 성취감은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제대와 함께 낙향한 그는 평소 ‘그려야만 산다, 그려야만 배운다’고 곱씹던 그의 굳은 신념처럼 중국 유학길에 올라 그림과 공부를 병행했다.

중국 사천미술학원 유화과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수묵산수화와 민화, 문인화 등을 두루 섭렵하며 순수하게 미술활동에 전념했다.

드로잉 실력을 갈고 닦고자 취미 삼아 시작했던 그림 일기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로 어느덧 20여년이 됐다고 했다. 그에게 그림 일기는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단짝 친구와도 같다. 그가 화실 곳곳에서 꺼내어 보여준 그림 일기에는 영락없는 그림쟁이가 담아낸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춘천미술관에서 그의 ‘중국 유학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 풍광에서부터 마음속의 이상향 시리즈, 그림 일기, 아내에게 보내는 그림 편지 등 다양한 작품 200여점이 선보인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액자없이 그대로 전시돼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화실을 구경하는 듯한 편안함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로 25년의 화력을 자랑하는 이 화백. 끝으로 그에게 있어 화가란 무엇과도 같은지 물었다.

“화가요. 달이 아닐까 싶어요. 밤이면 언제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잖아요. 앞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최대한 선보이고 싶어요.”

그는 춘천초교, 소양중, 춘천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학과와 중국 사천미술학원 유화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8년부터 18회에 걸친 개인전과 2회의 부부전, 다수의 단체전 등을 펼치며 활동 중이다. 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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