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재성

한라대 학생처장·경찰행정학과 교수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는 ‘욕구계층이론(needs hierarchy theory)’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자존의 욕구, 존경의 욕구로 구분하였다. 이 중 생리적 욕구는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욕구로 OECD 가맹국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한 우리나라는 이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안전의 욕구는 충족되고 있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에 대한 답은 ‘NO’다.

최근 우리나라는 총범죄량의 증가 뿐만 아니라 시민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조장하는 잔혹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예컨대, 연일 언론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동 및 여성 대상 성폭력, 흔히 ‘묻지마 살인’으로 불리는 이상범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범죄들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모든 여론은 경찰에 대한 비난에 집중된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범죄발생이 경찰의 대응능력 부재와 과학적 수사능력의 부족에서만 발생하는 원인일까. 그 대답 역시 ‘NO’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몇몇 관계자들의 지적에 따라 아동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음란물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물론 좋은 대안 중 하나이다. 그러나 많은 언론에서 모든 아동 대상 성범죄의 원인이 음란물에 있다고 대서특필하는 것과 달리 실제의 범죄현상은 한 가지의 원인이 아닌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 원인들은 개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며,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점에 의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에 따라 증가하는 빈곤과 실업, 교육기회의 차별,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의 부재 등 구조적 모순점들은 범죄발생에 있어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의 개선 없이는 범죄통제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범죄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점을 개선함과 동시에 전반적인 사회안전망, 특히 치안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치안은 사회간접자본(SOC)으로서 국민의 삶과 질에 직결된 핵심서비스이다.

그러나 5대 범죄 및 112 신고건수 등 치안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도처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인력의 증원, 현장 경찰력의 엄정한 법집행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경위 이하 경찰관이 전체 인력의 93.3%에 달하고, 경정 이하 경찰관이 99.5%를 차지하는 등 첨탑형 직급체계로 경찰 전체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어 양질의 치안서비스 제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범죄와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안전의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치안인프라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확충이 시급하다. 특히,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가 501명으로 미국의 354명, 프랑스의 300명에 비해 현저히 높은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경찰인력을 조속히 증원해야 하며, 급박한 위해 상황시 경찰관의 긴급출입 및 조사권한을 명시하는 등 ‘경찰관직무집행법’의 개정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경찰의 계급구조를 일본과 유사하게 경위급을 30% 수준으로 확대 조정하여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치안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정된 치안은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을 지키고, 범죄와 무질서 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을 줄이는 한편 국가 이미지와 신인도 향상을 통해 대외투자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국가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와 경찰 당국은 범죄발생 이후 근시안적인 단편적 정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치안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여 치안서비스의 질(質)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국민만족이라는 선순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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