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진

수필가

오늘은 음력 8월 1일, 우리 집안 벌초하는 날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한 과일 제주 포 등 제수와 벌초 준비물을 승용차에 가득 싣는다. 나뭇가지 찔림 방지 긴팔 옷, 양볼 차광 모자, 땀 닦기 수건, 흙먼지 막는 안경, 나무 가시에 안 찔릴 고무장갑, 마실 물, 벌·모기·진드기 퇴치용 살충제 등 많기도 하다. 중앙과 영동고속도로는 이른 새벽이라선지 쭉쭉 잘 빠진다. 4시간을 달려 드디어 산소가 있는 경북 울진군 평해읍 삼율리 정실에 도착한다. 마을회관 팔각정에다 짐을 옮겨 놓고 압력밥솥에 밥을 앉힌다. 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먹을거리를 진열한다. 잠시 후 부산 대구 포항 원주에서 조카들 부부와 손자들이 속속 들이닥친다. 반가이 악수를 나누거나 포옹을 하며 안부 묻기에 열이 났다. 얼굴마다 함박꽃이 피었다.

모두에게 커다란 스텐대접 하나씩 안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주걱씩 퍼 준다. 열무김치, 볶은 멸치, 고사리, 콩나물, 참기름도 넣는다. 방금 후포 어판 장에서 떠온 싱싱한 오징어·가자미회와 파 마늘 미역 초장 듬뿍 넣고 휘휘 비빈다. 다들 게 눈 감추듯 한다.

“역시, 이 맛이야!”

“숙모님! 고맙습니다.”

며느리들이 날라다 주는 따끈따끈한 커피 한 잔씩 후루룩 마신다.

주섬주섬 쟁기들을 챙겨서 지고 들고 나선다. 앞장 세우고 뒤따르니 일선 소대장 된 기분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산비탈에 톱과 낫으로 길을 내 가면서 일렬종대로 한 발 두 발 오른다. 한 해만 이리 나뭇가지를 치지 않으면 잡목들의 기세에 눌리리라. 사람 발자국 힘이 대단하다. 열 사람이 지나갔는데 완연한 길이 생겼다. 금방 산소에 도착했다.

“할배 할매! 저희들 왔어요.”

장조카가 산소에 대고 큰 소리로 알린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두 분도 깜짝 놀라 눈을 떴을까? 술과 포를 석상에 올려놓고 다 같이 재배한다.

조카 둘이 예초기를 메고 봉분에서 먼 곳부터 원을 그리듯 나선형으로 풀을 베며 왱왱거린다. 너무 잘 자라는 아카시아와 오리나무는 밑동까지 잘라 낸다. 조그만 계곡에 예초기, 톱 소리, 재잘대는 소리 겹쳐 갑자기 난리가 난듯하다. 산짐승들도 놀라서 멀리 달아났겠다. 다른 사람들은 낫을 들고 베어진 풀을 모아 산소 밖으로 던지고, 남은 풀을 베어간다. 봉분이나 산소바닥 어린 소나무와 아카시아, 대궁 생긴 풀들을 악착같이 뽑아낸다. 드디어 꽤 넓은 두 산소가 말끔히 단장이 되었다. 더벅머리 총각이 이발한 모습이다.

올해부터는 제수를 간단히 차리기로 작년에 약조를 했다. 메 국 편을 빼고 어물과 과일도 간소하게 진설하기로 했다.

“자, 올해는 상대 자네가 제주노릇하게.”

“형님이 하셔야지요, 제가 어찌······.”

“자네는 해마다 올 수 없잖은가, 그러니 얼른 하게.”

장손의 명령인데 감히 누가 거역하리. 녀석, ‘회사에다 연가를 내고 오길 잘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겠지. 하늘로 치솟은 궁둥이는 많아도 대견스럽다. 점심 때 또 얘기하자.

“절할 때 궁둥이는 발뒤꿈치에 달라붙게 최대한 낮추자.”

성묘를 마치고, 제주로 간단히 한 잔씩 정을 나눈다. 밤 대추가 공중에서 춤을 춘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들 갑니다.”

한 발짝 떼며 돌아보고, 두 발짝 떼며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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