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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의자

김응섭 2012년 09월 21일 금요일
   
▲ 김응섭

원주 서곡초 교장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장실에는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에게 어울릴만한 크기의 의자 하나가 출입문 옆 거울 아래 앙증맞게 앉아있다. 노란색의 등받이와 바닥을 받치고 있는 분홍색 다리가 있는 이 의자는 올 3월 초 학교에 부임하면서 처음 보았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의자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다른 곳에 치우지 않고 한결같이 그 장소에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의자 등받이에 씌어있는 ‘생각하는 의자’ 글귀로 보아 아마도 학급에서 말썽을 부리는 학생이나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사용한 교화용 의자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한 학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 의자에 앉은 학생들은 한 명도 없다. 내가 몇 번을 앉아 보기도 하였는데 엉덩이 한 쪽 걸칠 정도의 크기로 불편해서 잠깐 앉아보고 행여 누가 볼까 얼른 일어나 이내 의자를 바르게 정돈해 놓는다. 새삼 법정스님이 앉아 묵상을 하셨던 나무 의자와 사뭇 다르지만 내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교사 발령을 받고 10년 정도 시간이 흐를 즈음, 나는 뜻하지 않게 관내 3학급 분교에 발령받은 적이 있다. 그 시기에 나는 탐석의 멋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지인들과 가까운 강을 찾아가 나름 명석이라 이름을 붙인 돌멩이를 집으로 가져와서 물로 닦고 기름칠을 하며 그 중 몇 점은 좌대를 해서 가지런히 장식장 한 켠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욕심을 부려 배낭 가득 무겁게 돌멩이를 가져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으로 가져오는 돌멩이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왔던 돌들을 다시 강으로 되돌려 주는 일이 많아졌다. 집으로 가져오는 수고를 더는 값으로 동행한 분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수시로 내가 탐석한 돌을 보여주면서 지도조언(?)을 받는 수고를 한 덕분일까 돌을 고르는 솜씨가 날로 좋아진다는 칭찬도 들었다. 돌 틈이나 모래에 묻혀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 문양석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주변의 흙과 모래를 파헤치면서 느끼는 설렘은 학교생활의 고단함을 한방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즐거움이었다.

학교를 출퇴근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학생들 생활지도며 공문서 작성 등의 업무 피로를 탐석을 통하여 풀었는데 내 나름 석담(石談)이라 이름 짓고 돌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멋진 돌을 만나면 ‘너 참 멋있구나! 우리 멋진 친구가 될 수 있겠는걸. 내가 너를 아주 정중히 우리 집으로 초대하마!’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쉽다, 조금 더 잘 생겼으면 내가 너를 우리 집에 모셔놓고 아침저녁으로 닦아주면서 반겨줄텐데…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의 좋은 돌이 되어라’하고 아쉬움을 담아 다른 돌 위에 반듯하게 세워두기도 했다. 그런 탐석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비록 빈 가방이라도 마음만은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돌과의 대화를 나누면서 내 자신이 조금씩 성숙되어지는 뿌듯함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까.

며칠 전, 프랑스에서는 45년 만에 윤리교육을 부활시킨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교사와 친구를 모욕하는 일이 더 이상 학교에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도 그 중 한 가지였다. 돈과 경쟁, 이기심보다 지혜와 헌신,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는 페이용 장관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무척 밝고 명랑하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친구들이 달려와 인사를 하고 함께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한다. 때론 쉬는 시간에 복도를 운동장처럼 달리는 아이들도 만난다. 놀이에 겨워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쳐나가는 아이들도 더러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교장실의 ‘생각하는 의자’를 채우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연인 척 만나서 손 한 번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자기의 잘못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언짢거나 고민이 있는 친구들을 미처 알아봐주지 못하는 우리의 시선, 그들의 멋진 모습을 알아봐주지 못하는 우리의 무관심이 행여 있지 않을까? 너른 강에 놓여있는 수많은 돌멩이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멋진 돌을 만날 때의 그 즐거움을 이제는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얻으려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미래를 설계하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라도 교장실의 ‘생각하는 의자’는 늘 그 자리에 놓아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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