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창수 소설가

K형, 중뿔나게 바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희망버스’ 3차 때 부산에서 만난 게 지난 여름이었으니까 벌써 일 년도 더 지났네요. 그 뒤 한 차례 더 희망버스가 떠났고 드디어 김진숙 씨가 309일 만에 고공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던 날, 형이 제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아직 제 휴대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상엔 아직 희망이 남아 있구나. 아이들한테 절망만 남겨줄 뻔했는데,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아. 학교로 돌아왔을 때보다 더 기뻐.” 해직교사로 산 형의 10년 세월이 어떠했는지 잘 아는 저로선 참 놀라운 문자였습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소식을 전하게 된 건 참으로 우연한 일 때문인 듯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 저는 잘 압니다. 지난 토요일, 저는 홍천읍에 있는 석화산엘 갔더랬어요. 12번째 ‘생명버스’에 탑승을 한 거죠. 잘 아시겠지만 ‘생명버스’는 골프장을 짓느라 파헤쳐지고 있는 강원도의 산과 들을,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 느닷없이 삶의 근본을 위협받게 된 사람들을 찾아 한 달에 한 번씩 떠나는 버스입니다. 문자 그대로 ‘생명’의 현장을 찾아가는 그 버스의 탑승객은 ‘희망버스’가 그랬듯 위로와 사랑을 배낭 가득 넣고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죠. 이번 버스의 종착지는 홍천읍 갈마곡리, 홍천군청 바로 뒤편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여기에도 골프장이 들어선다내요. 군청 뒤편에 골프장이 들어설 정도니 다른 곳은 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현재 강원도에 운영 중인 골프장은 모두 46곳, 그 넓이가 1,307만평, 강릉의 경포대 300개에 해당된답니다. 그런데 기막힌 사실은 이것도 모자라 41개의 골프장이 더 들어선다는 겁니다. 지자체가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하라고 허가하고 승인했다는군요. 골프인구가 줄어들어서 회원권을 헐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고, 과잉공급으로 골프장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현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골프장이란 게 짓고 싶다고 막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산이든 들이든 엄청난 양의 토지가 필요하고, 거기에 어떤 보존해야 할 동식물이 사는지 면밀히 조사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곳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동의와 합의는 물론이고 골프장이 들어섰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이 있을는지 우선해서 살펴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을 지자체가 성실하게 조사하고 검토했다면 왜 골프장건설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겠습니까.

8살 때 헤어진 고향친구의 전화 한 통으로 목회 일을 제쳐두고 고향으로 달려온 사람, 수년째 농사일을 접어 고등어 한 손 제대로 못 사먹는 사람, 1년이 넘도록 골프장건설반대를 위해 노숙하는 아내가 오늘 밤 꼭 죽을 것만 같다고 매번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함께 몸을 뉘는 부부, 골프장공사 굴삭기에 훼손된 조상의 유골을 찾기 위해 직장마저 그만 둔 사람,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이웃이고 선후배고 친척이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어버린 사람들, 공동체를 지켜내겠다는 이유만으로 전과 8범(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집시법위반 등)이 되어버린 사람, 벌금폭탄을 맞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망연해진 사람들,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가 졸지에 투사처럼 용역들과 맞서야 하는 이들의 기막힌 삶이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씩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를 함께 보고나오다 형이 그랬었지요. “강원도가 참 슬프다. 사람들은 강원도에 와서 힘을 얻어가지만, 결국 강원도는 그들이 내다버린 온갖 욕망의 쓰레기들로 넘쳐나잖아.” 지난 토요일, 하늘다람쥐와 까막딱따구리의 천국이라는 갈마곡리 석화산을 오르면서 저는 형의 말을 떠올렸고, 오늘 이렇게 형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다음달 13일, 13번째 ‘생명버스’가 떠납니다. 그날 형의 얼굴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살아 있다는 형의 말을,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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