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간 삶 위로하는 노래”
12살 노트에 시 쓰며 시작 피난길에서도 펜 놓지 않아
12년만에 ‘이순의 달빛’ 출간 “내년엔 축시 모음집 낼 것”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과정이 고되다는 얘기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에게 창작은 ‘산고의 고통’이 따를 정도로 감내해야 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따른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이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세상에 예술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본지는 문학을 비롯해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랑스런 도내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세계와 삶의 애환 등을 들어본다.


 

▲ 이충희 시인이 화단 앞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강릉 출신 이충희(74) 시인의 시는 단숨에 읽힌다. 그의 시를 들여다보면 마치 흐르는 물을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매끄러운 시만큼이나 그에게 있어 시작(詩作)과정은 늘 호락호락한 법이 없다.

적재적소에 시어가 자리 잡지 못했을 경우 가차없이 퇴고를 반복하는 일이 그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오후. 강릉에 위치한 그의 자택 앞 꽃밭에서 그를 만났다.

화사한 원피스로 한껏 멋을 낸 그의 자태에서는 노년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시는 오직 시일 뿐이다. 시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도 같아 한 순간도 만만히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충희 시인.

그가 시와 처음으로 조우한 시절이 궁금했다.

그는 12살 무렵 비밀노트에다 끄적끄적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시와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라고 했다. 6·25전쟁이 발발해 피난길에서까지 시를 쓰곤 했다는 아찔한(?) 일화도 돌이켜보면 그에겐 그저 추억이 됐다.

강릉사범학교 1년 재학 시절에는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문예반으로 건너가 시 삼매경에 빠졌다.

그는 “문예반 지도를 맡은 스승의 시에 대한 높은 열정과 스파르타식 교육이 있었기에 학창 시절 시를 더욱 사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양양초교에 교사로 첫 부임해서는 수많은 제자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고 시심을 키워갔다.

결혼과 함께 3명의 자녀를 키우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느라 잠시 시와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다시금 시를 읽고 또 썼다. 남편도 그에게 원고지를 선물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1977년에는 갈매문학회 회원이 돼 본격적으로 등단을 준비했다. 1979년 마침내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시집 ‘가을 회신’, ‘마음 재우며 보는 먼 불빛’, ‘겨울 강릉행’을 상재했다.

그에게 시란 “인간의 삶을 위무하는 노래와도 같다”고 했다. 그의 시에는 항상 인간이 존재하며, 주로 삶을 치유하는 시를 써왔다.

최근에는 12년만에 그의 4번째 시집 ‘이순의 달빛’이 출간, 이순의 삶을 관통하는 중후한 시를 선보였다.

이번 시집은 그의 연륜만큼이나 시 또한 이순의 나이를 먹은 듯 차분하다.

그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 권만 더 묶으려고 한다”며 “내년에는 그동안 선보인 축시를 모아 축시 시집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도민의 날 행사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축하하는 축시를 낭송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축시 제의를 받으며 축하 전령사(?)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시에 대한 열정과 애착으로 충만한 이충희 시인. 그와의 짧은 만남에서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 ‘시벽’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이 이미 칠십을 지나보내고/지위 또한 삼공에 올라보았네/이제는 시 짓는 일 놓을만도 하건만/어찌하여 능히 그만두지 못하는가/(중략)살고 죽는 것이 필시 시 때문일 터이니/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렵도다”(시벽 중)

이 시인은 강원문학상, 관동문학상, 제2회 강원여성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강원여성문학인회 회장과 강릉여성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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