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 창성

본사 서울본부 취재국장

오늘날 박정희 대통령의 육성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육성까지 들을 수 있는 사진전이 청와대 이웃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김영삼과 나란히 대통령 꿈을 꿨던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육성도 만날 수 있으니 화제다. 사진작가 최재영의 사진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목이 쏠리는 것은 제 18대 대선을 80여 일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대선 주자들이 오버 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노무현 사진 속에서는 박근혜의 20대 퍼스트 레이디 시절 사진도 찾아 볼 수 있다. 노무현의 영원한 동지인 문재인도 있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거론하며 혁명적 개혁과 반값 아파트를 약속했던 엑스트라 정주영은 오늘의 안철수와 한편 같기도 하고, 한편 다르기도 하다.

사진전은 1979년 10월 26일 ‘무한권력’의 급서로 시작한다. 광화문 앞에 아치 형태로 세워진 ‘근조(謹弔). 고(故) 박정희 대통령(朴正熙 大統領) 각하(閣下) 국장(國葬)’ 이라고 쓴 흑백의 대형 한자간판 밑으로 국민들이 영구행렬을 따르고 있다. 1979년 11월 6일에는 권력의 공백기에 대권을 꿈꾸는 군복 차림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만날 수 있다. “본인은….”으로 시작되는 카랑카랑한 육성이 기억의 저편에서 군홧발 소리와 함께 되살아난다. 그는 집권기 총 48종 1억5500만장의 우표를 발행해 뿌렸다. 정통성이 없는 독재 권력이었던 만큼 선전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친구 노태우의 부상은 드라마틱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는 전국을 들끓게 했다. 사진은 수십만의 대학생과 시민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는 순간을 포착했다. 시위대 한 구석에서 나의 젊은 초상을 찾을 수 있다. 같은해 12월 ‘기획된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 이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전두환은 퇴임후 12·12와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노태우는 4000억 비자금 사건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군부독재 종식후 나란히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재임기간은 영광보다 상처가 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영광의 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중에는 친인척 문제로, 퇴임 후에는 대북 송금문제로 부침했다. 사진은 1996년 3월 제 15대 총선이 한창인 서울 종로구에 한 유세장을 조명한다. 노무현 이명박 이종찬 등 후보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선전을 다짐한다. 첫 승은 이명박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1998년 보선에선 노무현이 승리한다. 두 사람의 악연은 청와대로 이어졌다. 2002년 대선에서 신승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먼저 들어갔고, 2007년 대선에서 압승한 이명박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2009년 5월 23일. 이명박 치하에서 노무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500만명의 노란색 애도물결을 뒤로하고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대통령은 영욕을 함께하며 퇴임을 5개월 여 남겨두고 있다.

기자는 시인 이상국의 시를 인용해 경고한다. ‘시작하는 날에 끝 날을 기억하면, 끝 날에 시작하는 날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 터인데. 權不五年이라. …. 영원한 왕좌에 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만과 부패와 집착이 끼어들 수 밖에 없느니. 대선에 나서는 이여.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라. 그것이 자신의, 곧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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