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 프롬은 ‘아버지는 정의를 대표하는 존재요 어머니는 자비를 대표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정서적 돌봄이 어머니의 역할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책임감과 위기 극복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아버지 역할이다. 즉 아버지는 자녀가 흔들릴 때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버팀목으로 자녀성장의 보다 큰 그림을 책임진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자식들이 형성하는 초자아는 결국 아버지를 받아들여 만드는 것이라며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한다.

아버지 부재가 자녀들의 자신감과 사회성 부족은 물론 성적 저조에 이르기까지 지적 인성적 발달을 지체시킨 데서 나온 말이 ‘아버지 결핍증’이다. 심리학자 스티븐 비덜프는 아버지와 신체적 접촉과 놀이를 못해 본 아이, 가슴 속 생각과 고뇌들을 아버지와 대화해 보지 못한 아이, 적절한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 등이 아버지 결핍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파워는 너무나 강력하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물론 그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조차 귀한 세태가 되었다. 아버지의 추락한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는 다양하다. 미국 ABC뉴스 인터넷판은 아버지의 가정 기여 정도를 연봉으로 계산해 보니 어머니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고 최근 발표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줘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줘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 줘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초등학교 2학년생의 시로 존재감 없는 아버지의 서글픔을 표현한다. 명목상의 이름에 비해 실제는 너무 초라한 대접을 받는 역할군을 뽑으라면 아마도 이 시대 ‘아버지’군이 대표적일 것이다.

성폭행범 아들을 자수시킨 아버지가 회자되고 있다. 가족의 아픈 이야기이라 언급조차 조심스럽지만 그 아버지의 현명한 판단과 용감한 실천에 박수를 보낸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라는 김현승의 ‘아버지 마음’ 시구가 전해진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어떤 절박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녀를 구원하려는 아버지 마음, 세상을 지키는 힘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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