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로

사회부장

첫 서리가 내렸다. 그리고 첫 얼음. 추석이 지난 뒤 곧바로 들려온 소식이다.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 다가올 겨울이 조금은 두렵다. 무척 추운 겨울이라는데…. 그런데 거기까지, 일상에 대한 소소한 걱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사회는 절기와 날씨를 주제로 담소를 나눌 만큼 한가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거칠고 메마른 이야기가 넘쳐난다. 성폭력, 살인, 강도, 자살 등의 단어가 넘실거리는 사회. 그런 단어가 말과 글 속에 포함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사회,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 그게 우리 사회다.

또 있다. 정치인과 선거법. 그리고 검찰로 대표되는 사정 당국. 이 같은 단어가 빠지면 대화 자체가 싱거워진다. 금품 살포, 향응, 뇌물 공여 등의 단어가 말 속에 녹아들어야 정치판을 좀 알고, ‘세상 돌아가는 거 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모 국회의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금품 살포 의혹사건은 강원지역 호사가들에게는 빅뉴스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휘발성도 강하다. 삼삼오오 모이면 모 의원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관심 대상은 또 있다. 모 의원의 선거법 위반 의혹 사건을 사정당국이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오는 11일로 끝나는 공소시효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고 세간의 관심은 증폭되고 있다. 사정당국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눈치다. 앞서 처리했던 선거법 위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뒤죽박죽 엉키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달 27일. 검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원지역 국회의원 4명에 대해 ‘혐의 없음’ 또는 ‘죄가 안 됨’ 이라고 결론지었다. 4·11 총선 이후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사안에 대해 모두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특히 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또 다른 사안은 핵심 당사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사자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억울함도 호소했다.

그러나 반대쪽은 폭발했다.

특히 고발 당사자이기도 했던 민주당은 “국민의 편에 서서 정의를 밝혀야 할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불공정 편파 수사로 일관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유감”이라며 “재정 신청을 통해 정의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발표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의례적인 정치적 공방쯤으로 여겼다. 수사 결과가 추석 직전에 발표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는 모 의원의 선거법 위반 의혹이 한때 측근이었던 전 보좌관에 의해 폭로되면서 다시 반전 모드로 돌아섰다. 당장 민주당은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던 이전 사건에 대해 ‘재정신청’ 카드를 빼들었다. 모 의원 사건을 통해 이전 사건까지 재조명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모 의원의 금품살포 의혹에 대한 폭로가 결정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정당국에 대한 불신과 대선 정국에서의 주도권 싸움이 녹아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건의 본질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이 사건의 관전 포인트도 대선 정국에서의 정치적 공방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건의 본질, 즉 선거법 위반에 대한 진위여부는 또다시 정치적 격랑에 휩쓸릴 것이라는 게 사건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각이다. 정말 그럴까? 공직비리수사처 설치 문제가 또다시 거론되고 있는 대선 정국. 사정당국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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