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린

횡성 서원초교 교사

시험 보는 날. 조잘조잘 떠들며 해맑게 웃지만 “두 눈을 감아라.”하니 금세 조용해진다.

“눈 뜨는 사람은 시험지 안 내줄 거야. 잘 들어. 시험은 그동안 공부한 걸 얼마나 알고 있나 보는 거야. 시험보고 나서 누구는 1등이고, 8등이라고 부르려고 보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공부했으면 잘 볼 것이고 아니면 못 볼 거야. 그동안 놀다가 어제 하루만 공부하고 다 100점 맞길 바라는 건 잘못된 마음이야. 알았지?”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모두 굳은 얼굴로 조용히 문제를 본다. 신우는 긴장이 되는지 목에 핏줄이 서도록 침을 꿀꺽 꿀꺽 삼킨다. 인혁이도 긴장되어서 얼굴이 굳었다. 시험이 뭔지…

시험을 마치고 나서 아이들 굳은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체리와 체리씨」를 읽어주고 그림을 그렸다. ‘내 체리나무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며 그렸다. 아이들이 신나서 그린다. 그런데 체리가 너무 듬성듬성 열렸다.

“어어? 체리가 너무 조금 달렸는데? 누구 체리나무가 많이 열렸지? 신우 체리나무가 많이 열렸네. 따먹어야겠다.”

“안돼요! 이건 우리 나무예요.”

‘누구 체리를 따 먹어야지, 검붉은 색 체리가 제일 잘 익은 것 같다.’ 괜히 옆에서 시시덕거리니 아이들이 좋아서 더 열심히 그린다.

그 다음엔 백창우 노래를 배웠다. 새 노래 배우는 김에 그동안 배운 노래도 쭉 불렀다. 새 노래 이름은 ‘시험지’.

‘나는 시험지만 보면 쭉쭉 찢어서 다 태워버리고 싶다.’ 이 가사를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

자기들 마음이 드러난 말이라 더 좋은 거지. 노래 끝에 시험지를 쭉쭉 찢는 소리가 들린다. 노래 연습을 몇 번 하고 나니 영서와 신우가 이면지를 손에 쥐고 기다린다. 쭉쭉 찢는 소리에 맞춰 종이를 찢으며 웃는다. 시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확실하게 풀린 것 같다. 아이들 한명씩 안아주고 집에 보냈다. 오늘 밤은 푹 자거라. (2012.07.06. 교실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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