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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논 황새배미에서

이응철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 이응철

수필가

가을이다.

들판은 점점 황금빛으로 채색되어간다. 가을은 먹지 않아도 배부른 계절이다. 가을이면 알밤, 햅쌀, 풋콩, 햇고구마들이 쏟아진다. 겨울을 나지 않는 햇다람쥐도 도토리를 모아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요, 창공에는 이름 모를 새들도 어디론가 길손이 되어 떠나는 계절이다.

옛날 대가족 제도는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용케도 구남매를 배태시킨 고향이 신기하다. 절대 빈곤이 평등이던 그 시절, 햅쌀이 나기까지 늘 꽁보리밥이나 밀가루 음식으로 연명했다. 검고 굳은 보리밥을 아욱국에 말아먹고 여름날은 오이냉채를 마셨다. 가을 타작은 큰 행사였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서둘러 올벼 한자리를 베신다. 육우란 벼는 밥에 기름이 잘잘 흐른다. 씹지 않아도 절로 넘어간다. 입쌀은 도시락 한 귀퉁이를 차지할 정도로 귀하던 시절, 햅쌀밥을 먹는 것은 고작 타작하고 사나흘 정도요, 다시 식단은 꽁보리밥이다.

벼를 베어 말리던 추억을 더듬는다. 온가족이 논으로 나간다. 일하기가 싫었다. 신체적인 약골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 고등학교 때는 공부 때문에. 시험일이 익일인데도 노동력을 필요로 공부하다 말고 늘 끌려 나가곤 했다. 아들 손자며느리 모두 끌려 나간다. 질퍽질퍽한 논에서 벼를 베어 소나무 가지 위에 얹어 논둑으로 나른다. 낫질부터 서투르다. 수렁논에서 벼를 베면 몇 곱절 힘든 중노동이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을 달래듯이 발밑에서 미꾸라지가 꿈틀대며 반기곤 했다.

가을 춘천은 농무가 오전 내내 늦잠을 잔다. 수렁논에서 벼를 묶어 산비탈에 볏단을 날랐다. 그곳에 말린다. 어머님은 늘 안개가 걷히면 나가 마른 볏단을 묶으셨다. 지금이야 논에서 끝내지만, 예전에는 그 무거운 볏단을 반드시 마당까지 날라야 했다. 50단을 지고 고개를 넘을 때면 어깨와 가슴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동네 집들마다 이맘때면 마당을 진흙으로 단장한다. 신이 난다. 여름 내내 씻겨나간 마당에 진흙을 갔다 붓고 왕겨를 뿌린 다음 절구통을 굴린다. 타작을 하기 위해 모래가 없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마당이 굳어지지 않으면 온 가족이 나와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마당을 고른다. 울력이라고 해서 형님이 군대 가셔 우린 주로 밤과 새벽으로 동네 청년들이 볏단을 무료로 날라주곤 했다.

타작 날은 큰 행사다. 중학교 때인가 타작 날 조퇴를 맡고 온 적도 있다. 타작 때는 무 장아찌가 말린 오징어 반찬으로 바뀐다. 새벽부터 왁자지껄하다. 방-방대며 발로 밟는 탈곡기 소리-.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볏단을 내려 태질을 하고, 탈곡기로 벼를 털고 갈퀴로 볏짚을 추려낸다. 탈곡기 아래는 수북하게 벼가 쌓이고 계속 비질을 하며 짚북데기를 갈퀴로 가려낸다. 한편 알곡을 턴 볏단은 어느새 낟가리가 되어 큰다.

타작 날 어머님 손맛이 생각난다. 으뜸이셨다. 며칠 전부터 누룩을 꼬들꼬들한 술밥에 섞어 이 날을 겨낭한 농익은 막걸리와, 포기김치와 맷돌로 만든 두부찌개가 일품이다. 돼지고기와 두부사이로 고춧가루를 켜켜이 뿌려 간을 맞춘 두부찌개는 온 동네에서도 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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