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문희

강원교육과학정보원 원장

‘학습된 무기력’은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히만(M. Seligman)과 동료들이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전기충격을 가하는 동물실험에서 발견한 현상이다. 도피할 수 없는 상자에 통제력이 없도록 갇힌 집단의 개는 반복된 전기충격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어 결국 무기력하게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게 되며, 나중에는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도피한 다른 두 집단의 개들과는 다르게 피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에서 나온 개념이다. 교육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학습활동 또는 일상의 행동에서 실패 경험이 지나치게 누적되면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향상될 수 있음에도 매사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초임교장으로 꿈에 부풀어 50여명 정도의 소규모 초등학교에 부임한 후배 교장선생님이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놓인 아이들 때문에 고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거 하기 싫은데 안 하면 안 되나요?” “이거해서 뭐해요?” 등등 새로운 것에 대한 반발로 교실 문을 걷어차며 “안하던 건 왜 하느라 난리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며 방과후 교실로 가던 아이들. 꿈과 희망도 없이 자기 자신마저도 부정하던 대다수 아이들, 그로인해 사랑과 열정을 쏟아 가르쳐도 그 한계에 실망하는 교사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라던 후배 교장선생님이 이젠 아이들의 변화한 모습에 감동하고, 선생님들의 환한 얼굴에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단다.

어떻게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교장은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며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단 한사람이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은 달라질 것이라는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부터 치유하고,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며, 아이들도 스스로 무엇인가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가도록 우리부터 믿어주며 사랑의 실천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자는 교직원 모두의 다짐 아래 조급해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엉킨 실타래를 풀어간 결과라고 한다.

그런 다짐 속에 전 교직원이 혼신의 힘을 쏟아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학교꾸미기 시작과 동시에, 학습은 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정도의 학습 내용부터 출발하기, 학습동기 저해요인을 제거하는 한편 학습의 실패는 능력부족이 아니라 불충분한 노력, 학습방법 때문이었음을 느끼도록 했으며 한 번에 큰 목표를 주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조금씩 나누어 적절한 성취감을 맛보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놀이처럼 시작하는 교육활동 속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음악줄넘기, 난타, 우쿠렐레, 오카리나, 바이올린, 플루트, 애니메이션, 화상영어, 학교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스로 흥미와 적성을 찾고 도전정신을 갖도록 했다.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현상과 더불어 가치관과 도덕성의 상실로 위기의 가정이 늘어나며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습된 무기력’속에 내 몰리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거칠고 난폭해 지며, 꿈과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일어나야 한다는 공허한 외침은 있으나 실천은 하지 않으며, 날이 갈수록 삐뚤어지고 난폭해지는 아이들 문제가 발생하면 교육만 탓하는 사회 현상, 시장원리를 적용하여 교육에서 효용성만 따지는 교육의 몰이해는 뒤로하고, 많은 이들은 “도대체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탓하지만 교사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현실과 그 한계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은 지쳤고, 사기가 저하되어 있다.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 시장원리를 적용시킬 수 없음을 인식하고, 본질적인 교육에 충실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 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신바람 내어 교육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쉽지 않더라도 교육자들 또한 숭고한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다지며, 학습된 무기력에 내몰린 아이들이 적절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하여 자신감을 찾아가도록 하고, 사랑과 배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이 작은 학교의 교직원이 이루어낸 놀라운 변화를 교훈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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