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그리움이

먹물처럼 번져오는

허균, 허난설헌 생가 터에 안기면

겨울바람에 묻어오는

님의 향기, 님의 소리.



옷깃 여미고

대문 앞을 서성이면

어디선가 손잡고 얼싸 안고

이야기보따리 풀어 헤쳐

빛바랜 기억들

하나, 둘 들출 때면

겨울 호수의 파문 같은

아릿한 편린들이

퇴색한 낙엽 되어

툇마루에 맴을 돈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터에 안기면

낡은 기왓장 밑에서 숨죽이던

그날의 아픈 상흔들이

한꺼번에 기립하여

황량한 초당벌로 내 달린다

시커먼 목구멍을 드러낸

경포대 앞 바다로 내 달린다.



임종길·강릉시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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