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사진부장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대중화로 우리나라의 사진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인에는 전문 사진작가를 비롯해 아마추어 동호회원, 취미 생활자, 생활 사진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인의 급속한 확산이 자연환경 훼손 등의 적지 않은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

최근 한 언론매체에서는 희귀식물의 보고였던 경기도 칠보산 습지에서 자생하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보호식물로 지정된 또 다른 식충식물인 땅귀개가 이 습지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보도했다.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사진인들 사이에 돌면서 너도나도 몰려들어 무분별한 촬영 행위가 습지를 훼손한 것이다.

비단 칠보산 습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강원도 내에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동강할미꽃이 그 좋은 예이다.동강할미꽃은 1997년 생태사진가 김정명씨가 최초 촬영해 2000년도에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 박사가 ‘동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려진 정선 귤암리의 석회암지대에서 자생하는 한국 특산 다년초식물이다. 이 동강할미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구경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며 수난을 겪고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말라버린 묵은 잎을 떼 버려 꽃이 얼거나 말라 죽는가 하면 아예 사진촬영을 한 후 꽃송이를 다 꺾어버린다. 바위틈에서 거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는 동강 할미꽃이 인간의 탐욕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현장이다. 현재는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동강할미꽃 보존회원들이 탐방객들을 맞이하며 무분별한 훼손을 줄이고 있다.

또한 강원도와 같은 원시림이 많은 곳에서 자생하는 이끼 또한 보호가 절실하다. 삼척시 무건리 이끼폭포, 평창군 장전계곡의 이끼, 영월군 상동 이끼계곡 등은 주변의 계곡과 이끼가 잘 어우러져 전국의 사진인을 비롯한 등산객과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끼와 계곡이 많이 훼손돼 출입이 제한되거나 철조망으로 통제되고 있다. 상동 이끼계곡의 경우는 아예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이끼는 한번 훼손되면 복원되는데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연훼손은 극히 일부의 사진인들의 행동일 수 있으며 자치단체나 관계기관의 관심이 부족한 탓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물질적 발전과 정신적 발전 사이에 오는 혼동을 아노미라고 정의했다. 디지털카메라의 확산에 비해 사진인들의 정신적인 준비가 미흡해 오는 혼동이다. 훌륭한 사진과 좋은 촬영매너 등의 사진문화는 이 아노미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사이 우리주변의 아름다운 환경은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부 사진인들 사이에서는 얼마 전 부터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생태계 보호에 대해 관심을 유도하고 있지만 사진을 찍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반성을 통해 자연의 중요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한 반성이 물질적 발전과 정신적 발전 사이에 오는 혼동을 점차 줄여가야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의 많은 종들이 일부 사진인들의 사진에만 남고 정작 서식처에서는 영영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사진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진심어린 자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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