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선 정선아리랑 연구소장
라이브러리·아카이브즈·뮤지엄 합성어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 발표가 나기 전부터 마치 자치단체들 간에 아리랑을 선점하려는 듯 곳곳에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경상북도의 어느 지자체는 느닷없이 아리랑 원조지역을 자임하며 아리랑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건립비용만도 자그마치 1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대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선 후 갖춰질 정권 인수위원회의 과제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강원도에서도 이러다가 아리랑 박물관을 빼앗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거창하고 화려한 것에 현혹되지 말자. 성공의 핵심은 화려한 겉모습이나 규모가 아니라 차별화 된 콘텐츠에 있다. 주변에서 방만한 투자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애물단지 시설을 눈으로 똑똑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정부의 곳간은 우리에게 무한리필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아리랑 라키비움(Larchivium)부터 준비하면 어떨까? 라키비움은 라이브러리(Library), 아카이브즈(Archives), 뮤지엄(Museum)을 합성한 신조어로 세 가지 기능을 통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앞으로 아리랑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인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부턴가 라키비움을 꿈꾸곤 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아리랑 문헌 등 유형의 자료를 수집했고, 아리랑에 대한 무형의 목소리도 담아냈다. 그 자료는 역사의 고빗길마다 깃든 웃음과 눈물이 밴 기록이다. 라키비움은 이러한 기록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라키비움은 아리랑에 관련된 책도 읽고, 좋은 아리랑 정보제공처가 되기도 한다. 아리랑을 주제로 한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열어 아리랑의 감동을 전해줄 수도 있다. 무형을 유형화하고 유형을 더 구체화하는 라키비움은 아리랑에 대해 요것조것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무형과 유형의 자료가 멋진 조화를 이룬 라키비움의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아리랑 특별전이 열렸다. 당시 나는 아리랑과 관련된 생활사 유물과 문헌자료 등 405건 733점을 대여한 적이 있다. 소리로만 상상하던 아리랑이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게 자리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한쪽에는 마치 도서관을 연상하듯 자료실을 꾸며 책을 볼 수 있게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선의 노인들, 진도 술집의 주인과 손님, 탈북 여성 등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영상물로 제작되어 아리랑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라키비움의 장점은 많다. 끊임없이 아리랑 자료를 확보 하면서 동시에 박물관 기능도 살린다는 점이다. 전시도 중요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역사가 될 귀중한 자료의 가치를 교육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설립과 운영 예산 면에서도 효율적일수도 있다.

우리는 아리랑의 역사가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 ‘뭔가’가 거대한 박물관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지자체마다 세상의 트렌드를 넘어서려고 난리들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산을 옮기겠다는 기개로 큰 걸음을 내딛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특히 자료를 축적해 콘텐츠화 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아리랑 라키비움을 만들자. 그것도 작게 한 번 시작해보자.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리랑 콘텐츠로 승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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