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2007년부터 3년 동안 국가통계를 분석해 그해 주목해야 할 ‘블루슈머’를 발표했던 적이 있다. 블루슈머란 아직 미개척시장의 신소비층을 일컫는 말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증명해주는 지표이다. 2007년에는 일하는 엄마를 위한 ‘역할대행’상품이, 2008년에는 요리하는 남편 아이보는 아빠를 위한 상품이, 2009년에는 남성용 패션 및 메이크업 제품이 블루슈머 제품으로 발표되었다. 즉 이 세 사례는 여자남자 성역할 분류가 더 이상 의미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정 성역할의 파괴는 계속 진화한다는 사회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과거 주례사에 곧잘 인용되었던 성경 에베소서 귀절이다. 이 성귀를 인용해 주례사를 했더니 나이든 어르신조차 ‘아직도 저 주례사의 내용처럼 사는 게 가능하느냐’며 반문해 다시는 이 귀절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내 지인이 말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습관이나 인식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징후를 드러내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아이들의 교과서에서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서 일하는 그림이 엄마에서 아빠로 대체되었다. 뒤에서 밥그릇을 전하던 엄마가 밥상에 같이 앉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꾸준히 진행되는 변화이다.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삽화를 교과서에서 배제하자는 제안이 실천으로 옮겨진 것은 우리 사회에 ‘남녀 평등’인식이 널리 확실하게 자리잡았기에 가능한 수순이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사랑·연인·연애·애인·애정’ 다섯 단어 뜻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에서 동성애자 같은 성적(性的) 소수자를 배려하는 정의로 수정했다. 예를 들어 사랑의 정의 ‘이성(異性)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고쳤다. ‘이성’을 ‘어떤’ 으로 바꾼 것이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통념이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이해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성급했다는 의견도 있다. 정의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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